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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스릴러 장르의 책치고 워낙 두꺼워 읽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리뷰를 쓰려고 하니 워낙 방대한 이야기라 줄거리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한 번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치고 싶지 않다. 해리 홀레 시리즈는 《스노우맨》과 《네메시스》 이후 세번째 만남이다. 스노우맨이 해리 홀레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고 레오파드가 여덟 번째 작품인데 스노우맨이 워낙 쇼킹하여 이후 작품들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전작이 워낙 뛰어나면 그 뛰어남을 상쇄할 만큼의 작품을 만나기 힘들기에 영화에서도 전편보다 더 훌륭한 후편은 없다는 정설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레오파드는 제목처럼 강렬하고 잔혹하고 소리 없이 강하다(무슨 레간자 CF도 아니고.....)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509/pimg_7327071671009119.jpeg)
표범 같은 존재. 표범은 워낙 소리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먹잇감의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숨소리마저 먹잇감의 숨소리에 맞출 수 있다고 했다.-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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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금속공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파여있고, 무늬와 기호가 새겨져 있으며 그 가운데 한 구멍 끝에 고리 모양으로 된 빨간색 철사가 뛰어나와 있다. 이 공을 입에 문 여자가 숨을 쉬려 하지만, 공때문에 호흡하기 힘든데다가 공을 빼려고 힘을 주면 줄수록 발작적인 기침만 나온다. 패닉 상태에 빠진 이 여성은 문득 공 끝에 있는 빨간 철사를 잡아당기면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윽고 빨간 철사를 잡아당긴다. 그러자 구멍안에서 7센티미터 길이의 바늘이 튀어나와 네 개는 여자의 볼을 뚫고 나가고 세 개는 부비강, 두 개는 비강, 두 개는 턱 아래를 뚫고 나온다. 예닐곱 개의 바늘은 입천장 뒤쪽을 통과해 뇌까지 침투했다. 그러나, 이 여자의 직접적인 사인은 바늘이 아니라, 바늘이 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기도로 흘러들어가면서 산소 공급을 방해하여 사망한 것이었다. 이 장면이 바로 스노우맨의 계보를 잇는 레오파드의 살인 병기 ’레오폴드의 사과‘의 서막이다.
전편 스노우맨에 이어 라켈과 올레그가 떠나간 후, 해리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홍콩의 뒷골목에 흘러 들어간다. 타락한 이들의 도시라 할 수 있는 홍콩의 청킹맨션은 흔한 홍콩 누와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뒷골목 풍경처럼 마약 사범과 조직폭력배들의 천국이다. 형사로 살아가는 동안 연쇄살인범 사냥꾼이 아닌 욕망과 고통에 몸을 맡긴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해리는 마약과 알콜, 도박으로 시간을 떼운다. 마치 마음 속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생채기를 내듯 해리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런 해리 앞에 미모의 여형사 카야가 찾아와 오슬로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전말을 들려준다.
스노우맨 사건으로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잃었던 해리는 형사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에 마음을 움직인다. 이후 아버지는 해리의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희망으로 되살아난다.
이어진 살인은 첫 번째의 잔혹함을 능가하며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의 지역을 암시하는데 피해자들이 ‘우스타오셋’에 위치한 호바스 산장에서 스키를 타기 위해 하룻밤을 머물렀다는 것으로 이들의 살인의 시발점이 밝혀지고 피해자들의 몸에서 마취제로 쓰인 케타노메와 콜탄(콩고에서 독점공급하는 광물)은 연쇄살인범이 콩고 민주공화국과 연관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눈덮인 호바스 산장과 용암이 펄펄 끓는 화산지역의 콩고라는 두 지역의 극명한 대비는 작품 전체를 뒤덮는 감정대비와도 같다. 때로는 차갑게 식어 간 해리의 사랑이, 때로는 불처럼 강한 카야의 사랑이 선명하게 대비되기도 하고 또는 아버지의 애정결핍으로 차가운 심장의 토니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레네의 불같은 심장이 감각적 대비를 이룬다. 게다가 해리와 상반되는 캐릭터 미카엘 벨만과 카야와의 삼각관계도 극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다.
800 페이지라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 없이 분초단위로 느껴지는 극의 스피드한 전개는 요 네스뵈 스릴러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감각이다. 마지막 장까지 짐작 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감탄할 따름이다. 사랑과 미움의 경계선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인생에 대한 탐미적인 시각을 놓치지 않는 해리 홀레를 따라가며 표범처럼 강인하고 빈틈이 없이 따라다니는 삶을 성찰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말 길지만, 역자의 말처럼 작품에 낭비되는 설정이나 배경은 없었다.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의 상징이자 복선이고
암시이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 연장선상이었다. 정리는 미흡하나, 다음편을 읽기 위해 약간의 기록을 적어놓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어서 [레드브레스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