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영화에는 누아르장막이 짙게
드리워진 느낌이 든다.
사상초유의 사고로 요며칠 우울과
스트레스지수가 최고조에 이르렀는지 며칠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영화 몇 편을 보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잔혹한 살인마가
등장하는 <더파이브>와
<몬스터>였다.
픽션으로 치부하기에는 암담한
우리네 현실의 연장선을 보는 것 같아 심장이 벌렁벌렁하였다. 한편으로는 이토록 범죄스릴러의 장막이 짙게 드리운 이유조차도 한국사회가
주는 공포수위가 이미
위험수위를 한참 초과한 하드보일드임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년 가족들과
함께 청소년 수련관에서 주최하는 오리엔티어링에 참가한 적이 있다.
지도와
나침반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이라는 가족레저는 최근에는 휴대용 GPS를
이용해 캐시(보물)을
찾는 보물찾기로 진화했다. 지구를 뜻하는 지오GEO와 보물을 뜻하는 캐시(cache)를 찾는 게임으로 휴대폰GPS를 이용하여 찾는 최첨단
보물찾기를 지오캐싱이라 한다. 지오캐싱을 하기 위해서는 지오캐싱닷컴에 프로필과 캐시를 등록하여야 하며 좌표캐시("cache")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오캐싱닷컴에 등록된 프로필은 수정이나 삭제가 불가능하다.)
과거 친구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일이 오랜 트라우마로 새겨져 있는 여형사 베아트리체는 싱글맘이다.
아름다웠던 에벌린의 죽음이 자신 탓이라 생각하는 베아트리체는 에벌린의 죽음이후 사랑했던 남자와도 헤어졌고 학업도 그만두었다.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 아힘과의 결혼생활은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일과 육아 어느 것 하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우울한 날을 보내는 평범한 형사이자 엄마이며
이혼한 여자였다. 그런 베아트리체에게 '지오캐싱'초대장이 날아온다. 초대장은 손이 묶여 있는 한 여인의 시체발바닥에 쓰여 있는
좌표(N47"35.285 E013"17.278) 였다.
지오캐싱
회원이었던 슈테판의 도움을 받아 지오캐싱 게임의 방법을 배운 베아트리체는 GPS의 좌표가 가르키는 지점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남자의 손이 담겨
있는 캐시통을 발견한다. 그리고 베아트리체 앞으로 쓰여진 편지에는 죽은 여인 노라 파펜베르트의 필체로 다음 좌표를 가르키고 있다.
이름이
크리스토프인 남자 성가대원을 찾아,
그의
왼쪽 손등에는 점이 있어.
대략 오륙 년 전쯤에
잘츠부르크 성가대 소속이었고,
거기서 슈베르트
미사곡 내림가장조를
불렀다는 데에 매우 자부심이 강해,
그의
출생연도 마지막 두 자리 숫자를 A라
하고
이
A를
제곱해서 37을
더하고,
당신이
가진 북쪽 좌표에 이 숫자를 더해.
A에
10을
곱하고 그 자릿수의 합을 구해.
그런
후 A를 이 숫자와 곱해.
229를
빼고 당신의 동쪽
좌표에서 나온 숫자를 빼.
스테이지
2에
온 걸 환영해.
거기서 다시 봐.
첫
번째 좌표가 이끄는 두 번째 장소에서 다시 세 번째의 좌표가 발견되고 좌표가 가르키는 곳마다 캐시통이 발견된다. 캐시통에는 전혀 다른 희생자들의
사체가 담겨져 있고, 다섯 명의 희생자들의 잘린 손과 잘린 귀, 잘린 손가락이 발견된다. 좌표를 가르키는 각 편지에는 첫 번째
희생자였던 노라
파펜베르크의 필체로 쓰여진 글이 쓰여 있고, 이들 다섯 명의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오년 전 이들이 지오캐싱을 하였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지오캐싱에서 찾은 이들의 마지막 캐시에는 이들 다섯 명의 희생자 사인이 있었으며 베일에 가려진 한 명의 조커가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점점
미궁속에 빠져드는 사건 가운데 베아트리체와 플로린은 점점 무력해지고 그 가운데 노라의 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범인의 메시지에는 과거 베아트리체의
오랜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암시가 담겨져 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범인의 메시지로 인해 심리적 부담감과 혼란이 가중되던 베아트리체는 아이의
엄마이자, 형사로서 더욱 큰 불안과 공포에 잠식되어 간다.
당신들은 모든 걸 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야
이 책의 작가 우르줄라 포츠난스키가 그리는 여형사 베아트리체는 과거 슈퍼우먼화 되어있던 여성상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사회에서는 남성중심의 조직사회에서 소외된 모습으로, 동료 플로린과 차별을 받고
남편에게서조차 일때문에 육아를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이후 육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사회적 역할 부담감까지 떠안고 있으며 범인과의 두뇌게임으로 괴로워 하는 베아트리체는 안쓰럽기 그지없는 캐릭터이다. 작가는 베아트리체의
심리적 부담과 압박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현실의 짐을 떠안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리얼리티한
감각으로 그린다. 누와르의 장막이 짙게 드리워진 현대인의 불안한 삶은 마치 캐시를 쫓는 지오캐싱의 긴박한 게임처럼 흘러가고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의 짐을 떠맡은 부초같은 여성의 삶을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한 《파이브》는 심리 스릴러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