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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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두 가지 세계로 분열되어 있다. 한 세계는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세상으로서의 사회이다. 또 다른 세계는 학자들의 폐쇄적인 아카데미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로서의 사회이다. ‘세상으로서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삶들과 세계로서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회학자는 각자의 세계에 분리된 채 살고 있다. 각각의 세계에서 그들은 서로 알아 듣기 힘든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회는 알면 알수록, 짜증난다. 이건 진리이다. 그 짜증의 이면에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내 생각내 뜻이 아닌, 누군가의 생각과 누군가의 뜻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에 의해  가 움직이고 있으며, ‘는 없고 익명의 타자들을 항상 의식하며 사는 나의 또 다른 세계가 곧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타자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의 간극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크다는 깨달음이 뒤통수를 후려치게 된다. 그렇기에 사회에 속한 는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로 망망대해에 던져진 부표浮漂와 같은 존재이다. '나'라는 개인을 철저히 부표로 만들어 버리는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흔히들 이야기 하듯 '세상물정'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를 보라,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사회를 보는 나는 늘 불안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왜냐, 나는 이른바 '낀세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낀세대임을 실감하는 순간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혼동이 느껴질 때이다. 디지털세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윗세대와 가르쳐주지 않아도 태어나자마자 디지털 세계에 입문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상상이상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우리의 낀 세대들이  파타피지컬(현실과 가상의 혼재)' 터널을 지나고 있음을 깨닫고는 한다. 우리 낀세대가 불행한 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회학자 피터버거는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유사하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사회에 관해 많이 알 수 있으니까.“ 라며 문학적 상상력의 통찰이 사회학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한 번 뿐인 삶을 여러 번의 삶을 경험하게 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소설과도 같은 학문이 바로 사회학이다.  사회학 안에는 역사와 철학, 문학이 씨줄과 날실로 엮여 통찰하는 세상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렇게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학문이 사회학이지만,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학문 뒤에 숨어 사회학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저자 노명우는 사회학이 전문화의 길을 걷는 학자로서의 학문이 아닌 사회학 본연의 모습 잃어버린 세속적 삶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세상이라는 미로를 빠져 나올 수 있는 지혜의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아 세속의 리얼리티’에 뛰어 들었다.  

삶의 리얼리티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ía 라는 환등상幻燈像의 등불을 끄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다.

 

 

사회학은 삶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이나 하면 된다와 같은 사실상 거짓말에 가까운 헛된 기대가 아니라 철저하게 삶의 리얼리티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대표하고 있는 스무가지의 키워드들 -상식,명품,프랜차이즈,해외여행,열광,언론, 기억, 불안, 종교, 이웃, 성공, 명예, 수치심, 취미, 섹스, 남자, 자살, 노동, 게으름, 인정, 개인, 가족, 집, 성숙, 죽음-을 관통하며 사회에 통념되고 있는 된장녀, 군중심리, 세계화, 여론의 흥망성쇠, 종교와 자본주의의 유사성, 사회적 자살의 증가와 사회의 이면들을  진단하며 삶을 관통하는 철학으로 투사하여 해석해 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저명한 사회학자 피터 버거가 연상되곤 하였는데 둘 다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이 아닌 삶의 리얼리티에 근거한 사회학을 주장하는 점에서 많이 비슷했다. 특히 '낀세대'로서 긍정의 사회학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는 긍정과 환상의 거품을 빼고 날 것의 사회를 통찰할 필요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고 새삼스레 내가 세상물정에 지극히 어두우며 여전히 사회는 불안하고 두렵게 느껴지지만, 그러한 세상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아리아드네 실이 필요하다면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우리 낀세대들에게 ...

 

시장은 범죄율을 숨기고 여자 의원은 주저하고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정작 투표일을 까먹고

일기 예보관은 맑은 날을 예고했는데 비가 온다고 투덜대고

모두가 저항하고 있는데,

남자친구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러지 말라하고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없고, 여자들도 보호받지 못하고

정치인들은 이용당하는 사람들을 써먹고

오염된 강물처럼 마피아 세력은 커져만 가고

당신은 이게 현실이라 내게 말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는 지끈거리고

침대에서 흘러나오며 내던졌던 옷들을 끼어 입고

창을 열고 뉴스를 들어도 지배층들의

블루스만 들을 수 있을 뿐이고

총은 불티나게 팔리고, 주부들은 삶이 따분하고

이혼만이 해법이고, 흡연은 암을 유발하고

열 받아 있는 젊은이들의 노래 속에서

이 따위 체제는 곧 망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이 구체적인 냉혹한 사실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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