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5 - 고국원왕, 백성의 왕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기황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궁중암투와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입장 차이를 보는 것은 역사소설에서나 가능하다. 이러한 군주와 신하의 도리(君臣有義)를 통하여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되새겨주는 지혜의 샘물인 역사소설은 무한한 시간에 비해서는 너무도 짧은 우리의 삶에서 진리를 퍼 올리는 우물이다. 고려의 궁녀가 원나라의 황후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개인의 삶을 통해 들여다보는  애국과 애민정신은 지혜공작소와 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준다.  같은 이유로 김진명의 《고구려》 시리즈를 좋아한다. 시리즈가 나올때마다 기대이상의 벅참을 선사하며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였지만  고구려 5권의 고국원왕에 와서는 긴장감이 다소 주춤한다. 4권까지의 주인공들이 워낙 개성들이 강한 캐릭터들이였고 패기 넘치던 일기당천의 군주였던 을불의 퇴장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줄 정도의 인물이  5권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비참했다던 왕의 모습은 을불의 자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비굴의 극치를 이루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럴진대  영토확장이 곧 나라의 생존이유이자 흥망성쇠를 좌우했던 고대사회에서 영토확장은커녕  화친을 이유로 백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며  적에게 서슴없이 무릎을 끓는 왕이라면, 가장 비참한 왕이라 기록된 역사의 기록이 결코 지나치지 않은 평이다.

 

 4권에서  

지리상 요충지였던 낙랑을 두고 두뇌싸움을 벌이던 다섯 재사(최비,문호,원목중걸,창조리,아영)가 퇴장한 후의 고구려의 운명은 태자에게 달려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을불과 아영이 고구려의 위상을 높이는데 생을 바쳤던 것처럼 자신들을 대신하여 고구려를 드넓은 초원의 최강자로 만들어 줄 운명의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고구려의 미래가 달려있다.   태자 사유의 문文, 태자 무의 무 武 사이에서  갈등하던 미천왕( 을불)과 아영의 선택은 모두가 생각했던 태자 무가 아니라, 사유의 문文이었다. 을불은 고구려의 태자로서는 어느 면으로 보아도 유약하였던 사유가  낙랑대전이후 겨우 살아남았던 국경의 한 마을에서 아픈이들을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며 고구려의 평화를 위해 사유를 선택하였다. 광활한 초원위의 드높았던 고구려의 기상이 사유로 인해서 하루아침에 꺾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미천왕은 자신의 나라를 그렇게 물려주었다. 오로지 백성의 평화를 위해서.. 

 

 

다 묶지 못한 매듭

고구려 여인 아영에 의해 모용부가 패망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았던 모용황은 고구려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주변의 부족들을 복속하며 영역을 넓혀가며 화려의 극치를 이루는 극성을 증축한다. 아버지 모용외보다 더 잔인하고 더 용맹한 장수 모용황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서서히 고구려의 목을 조르는데  고구려의 복수만이 처음이자 끝인 삶이다.

그러나,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

이 아비는 결코 전쟁을 물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왕이 되자마자 천하를 전쟁없이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불태우던 태왕 사유는 국경에 근접한 마을의 백성들이 모용황에 의해  수백 구의 시체로 변하여도 꿈쩍하지 않는다. 모용황의 끊임없는 도발에 전쟁을 불사하는 신하들에게 오히려  적국 모용부에 화친의 사신을 보내라는 명을 내리는 사유.  아버지 을불이 쌓아올렸던 태왕의 권위와 권력앞에 무조건적인 복종의 모습을 보였던 신하들 역시 을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태왕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  화친을 위해 모용부에 간 사신들은 모진 매질을 당한 채 돌아오는 것이 태반이다분노로 끓어오르는 조정 신료들의  출병요구에도 화친을 주장한다. 온갖 항의와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하는 모용부의 사신을 자처하는 이가 없자 미천왕 을불과 함께 천하를 호령하던  태후 아영이 모용부로 떠난다.

 

그러나, 아영이 누구던가. 천하의 다섯 재사중의 한 명이며, 모용외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사랑했던 여인이며 을불을 고구려 태왕으로 만들었던 여인이 아니던가. 아영은 사유에게 사신을 가장하여 모용부를 없애기 위해 떠난 길이다. 모용부와 얽혀있던 인연의 중심이자, 모용부와의 뿌리깊은 은원관계는 바로 아영으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스스로 결자해지의 길을 떠나던 차였다. 과거 모용외에게서 받았던  일기당천 천하무쌍 모용외라 쓰여 있는 낡은 깃발은 아영과 모용부 사이,  미처 다 맺지 못한 매듭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천군만마와 같던 왕제 무의 군대가 있었다. 아영은 신묘한 계책으로 모용황의 형제인 평곽의 모용인을 이용하여 숙적 모용부와의 마지막 방점을 찍으려던 순간 백색 깃발을 들고 나타난 사유로 인해 저지당한다. 아영의 계책에 재를 뿌린 것도 모자라  화상을 입고 겨우 목숨만 붙어있던 모용황에게 엎드려  사죄하는 사유의 행동에 울화와 분노를 삭히지 못한 태후 아영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북전으로 유폐한다.

모두가 틀렸습니다. 저 아이가 틀렸고, 저 아이를 선택한 당신이 틀렸고,

당신을 선택한 제가 틀렸습니다.’

이에  사유는 거의 백여 개에 달하는 축성을 쌓으라고 지시를 내린다.  수많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는 태왕 사유는 전쟁을 피해 두터운 성벽 뒤에 몸을 숨기고는 평화를 외치는 비겁하고 나약한 군주이며 고구려 왕 중 가장 굴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고구려와 사유에게는 구부가 있었다. 을불과 아영이 꿈꾸었던 나라는 비록 사유에게서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다음 대인 구부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구부는 바로 법치의 군주 소수림왕이니까. 고구려 시리즈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면  짧디 짧은 인간의 생에서  세대를 이어져 내려가 역사를 이루고 그 역사안에서 인간의 소명이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구부의 소  

모용부와의 전면전에서도 굴욕으로 일삼던 군주 사유의 면모는 아들 구부의 '농부와 소'에서 다시 재점화된다. 죽어있는 농부(주인)의 옆에서 피골이 상접하도록 야윈 소가 주인곁에서 같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구부는 군주와 백성의 이해관계를 통해 백제의 부여구, 모용부의 모용황, 고구려의 사유가 어떠한 군주인지를 반추한다. 군주는 곧 농부의 오마주이며 소는 곧 백성의 오마주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농부와 소에 대한 관점이  곧 군주의  통치이념과 연결되어진다는 것이다. 백제의 부여구는 선택받은 이들만이 꿈과 의지를 가질 수 있으며, 소는 그저 농부의 꿈과의지를 도와줄 뿐이라고 하듯이 부여구는 군주가 지녀할 도리를 강조하였고, 모용부의 모용황이 농부의 채찍이 소를 복종하게 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모용황의 권력을,  고구려의 사유는 소를 남겨두고 죽은 농부가 나쁘다는 대답을 통해 군주의 도리를 백성을 돌보는 데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양한 군주들의 통치이념들을 통해 구부가 선택한 덕목은  '법치'라는 덕목이었다.

 

 거시적인 관점의 역사서는 흐름과 사건이 중요 뼈대이지만, 미시적인 관점의 역사서는 개인에 대한 이해가 중요 뼈대이자 기본 틀이다. 과거 역사의 흐름 안에서 개인을 이해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길 때 비로소 과거가 현재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역사서의 미세한 움직임에 불과하였던 역사인물의 재조명은 이 미세한 개인이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를 살펴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역사소설은 그래서 중요한 미래의 거울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사건안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개인(군주)의 삶을 맞물려 고구려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굴리는 김진명 작가의 5권은 사유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정복전쟁이 주춤하면서 역대 가장 비참한 왕으로 기록되었던 고국원왕의 시대를 재조명하며 개인(사유)에 대한 화해와 이해의 역사를 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천하의 패자로 군림하던 모용부의 연나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시종일관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건재한 고국원왕의 고구려는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이 있었음을 말한다. 김진명은 사유를 통해서 역사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한 사람의 지혜가 역사를 떠받치는 동력이 되고 있음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백성과 신하, 심지어 낳아준 어미마저도 사유에게 등을 돌렸지만, 기라성 같은 패자들의  명멸하던 시대에  어쩌면 사유의 온건책으로 인하여 후대의 고구려가 강성해질 수 있는 힘이 고국원왕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것이 사유의 운명이자, 고구려의 운명이며 미천왕이 바라마지 않았던 고구려의 미래가 아니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4-02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2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