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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열 갈래의 길
유예진 지음 / 현암사 / 2012년 10월
평점 :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불리워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를 프루스트 전공자 김희영의 번역으로 민음사에 출간되었을 때 읽었었다. 지금의 기억으로도 프루스트의 소설은 극한의 아름다운 소설로 회상 되곤 한다. 역자 김희영 교수는 번역 작업을 통해 “길고 난해한” 프루스트의 문장을 “최대한 존중”하여 “텍스트의 미세한 떨림”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으며, “독자의 이해와 작품의 올바른 수용을 위해 최대한 많은 주석 작업을 통해 문화적, 예술적 차이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말한다.(민음사/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역자 김희영) 나는 역자의 말 가운데 ‘텍스트의 미세한 떨림’이라는 말의 뜻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프랑스어의 미세하고 가느다란 떨림의 느낌이 외국인들 특유의 감성적 표현을 말하는 걸까. 딱딱한 한국어로 미세하고 가는 떨림의 느낌은 어떤 감정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프루스트의 책을 대하였던 것 같다.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은 프루스트가 문학사에서 가진 가치와 탄생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발자취를 실제 프루스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에게서 찾는 독특한 책이다. 실제로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인 베르고트를 제외하면 모두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프랑스 문단을 지배한 실존 인물들이다.
여성들이 감히 작가가 될 수 없는 시대 (예를 들면 조선시대 허난설헌과 같았던 ) 작가 세비녜 부인은 프랑스 문학사에 가장 유명한 편지들을 남겼다. 시집 간 딸에게 보낸 편지가 사후 편지 28통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문학에 유행하는 서간체 소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프루스트가 세비녜 부인으로부터 프루스트가 가장 영향을 받은 부분은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중요성을 엿보았다고 한다. 라신으로부터는 비극의 정수인 [페드로]를 통해 사랑의 모든 형태를 차용하며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사랑으로 승화시켰고 [에스테르]를 통해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뿐만 아니라 성 정체성까지도 문학을 통해 예술로 승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탈리]는 할머니와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수단으로서 소설의 소재로 차용된 것을 볼 수 있다. 프루스트는 발자크의 천재성을 인정하며 작품의 제목과 구성에 발자크에게서 받은 영향을 그대로 드러내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개인적인 특성에 있어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평생을 돈걱정하지 않으면서 글을 썼던 프루스트와 달리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 났던 발자크는 빚으로 인해 매일 같이 글쓰기를 해야만 했었다. 프루스트와 발자크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과과 작가론의 상당한 견해차이를 볼 수 있다. 프루스트는 기존의 전통 소설에서 벗어나 문체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려 했으며 이는 현대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남기지만, 발자크는 전통적인 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프루스트는 발자크가 개인의 현실과 일상을 뛰어넘는 문체를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루스트가 작가로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은 플로베르였다. 프루스트와 플로베르, 둘 다 부르주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동질감을 느끼지만 다른 점은 플로베르의 인물들은 비극적인 죽음이나 실망스러운 결말을 맞지만, 프루스트의 주인공 마르셀은 희망의 빛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공쿠르 형제를 통해서는 자신의 작가의 소명을 깨닫는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마르셀이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마르셀은 공쿠르와 같이 세부적인 사항을 관찰하고 표현할 능력은없지만 자신은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음을 어렴풋이 의식한다. 공쿠르의 일기를 통해 마르셀은 앞으로 자신이 쓰게 될 작품의 방향을 본 것이다.
이외에도 조르주 상드와 베르고트, 앙드레 지드,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 바르트가 프루스트 문학을 독자의 감정에 따라 읽게 되는, 객관적이지만 매우 주관적인 텍스트로서의 문학이라 평하기까지, 프루스트의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인물들은 17세에서 19세기까지 프랑스 문단을 주름 잡았던 거물들의 굵직한 문학사조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낯익은 이름 몽테스키외와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가 독일 첩자로 몰리자 에밀 졸라가 대통령에게 보낸 [나는 고발한다] 제목의 장문의 편지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통해 작품으로서만 접했던 작가 프루스트의 색다른 면모들을 보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 책이 무척 어려울 줄 알았으나, 단숨에 읽어내려 갈 정도로 문학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가장 난해하다는 텍스트로 꼽히는 프루스트의 대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프루스트가 '극한의 아름다움'이라는 찬사를 받게 되기까지의 삶을 재조명해주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지닌 문학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프루스트의 작가론까지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우리나라 작가가 이런 책을 썼다는 것에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뛰어난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 예술가 자신이 반드시 위인이나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대단한 경험이나 놀라운 사건을 목격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즉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 모두 위대한 서사시를 남긴 호머가 될 수 없고, 빼어난 경관을 보고 모두가 뛰어난 풍경화를 그린 터너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보잘것 없는 삶을 살았고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라도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믿음 때문에 중년이 된 주인공 마르셀이 남은 평생을 소설을 쓰는 데 바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 소재로 선택한 것이 바로 자신의 삶, 그것이 아무리 평범하고 시시해 보일지라도, 자신이 걸어 온 인생이었던 것이다. -p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