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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20주년 기념판) -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ㅣ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1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월
평점 :
《미학 오디세이 1》이 출간 된지 벌써 20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하물며 요즘 같은 시대에 20년이란 시간은 과거 십년이라는 시간의 흐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LTE- A급 속도로 흘러간다. 그 시간의 흐름속에 잊혀지고 묻힌 책들만 하더라도 어마어마 할 텐데 20년이란 시간 안에 미학서로서 고전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 '이십주년 기념판'이 새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서른 살이었던 그도 어느 덧 오십이라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그 사이 대중들에게는 미학자보다 진보논객으로 더 유명해진 진중권을 미학자로서의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 주었지만, [서양 미술사]와 같은 맥락의 책이라 여겼던 탓에 이제까지 미루고 있다가 1권을 읽으면서 사람들에게 여전히 최고의 미학서라는 찬사를 듣게 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성에서부터 기존의 미학서에서 볼 수 없었던 구성이었고, 여러 면에서 다른 미학서와는 차별화 된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든 구어체라는 글쓰기와 에셔의 눈을 통해 미학의 지형을 그려주며 가상과 현실이라는 아리아드네의 실로 미술사의 흐름을 개괄하고 있는 진중권만의 책이다.
이 책은 테세우스가 복잡한 미궁을 빠져나오기 위해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하였던 것처럼 미학이라는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가상과 현실'이라는 개념 틀 위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서술되는 미학은 문학적 3성대위법- 서술체의 미학사, 대화체의 철학사, 예술가 노모그래프-라는 독특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3개의 구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간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형식으로 서로 독립적인 세 가지의 목소리가 교차하다가 만나서 주제를 동시에 조명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세 가지의 독특한 글쓰기의 방법은 지금도 진중권식 글쓰기로 많이 회자되는 것 같다. '작가노트'에서 보다 세세히 진중권식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상과 현실'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며 등장하는 또 하나의 미학 세계는 , 모리츠 에셔의 작품을 통해 가상과 현실의 미학사 흐름과 궁극의 아름다움이라는 미의 세계를 볼 수 있다. 모리츠 에셔는 네덜란드의 화가로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다룬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하다. 그는 교묘한 수학적 계산에 따라 작품 활동을 했는데, 특히 ‘이상한 고리(뫼비우스의 띠) 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다. 그의 작품세계를 진중권은 8가지로 정의해 놓았다.
1, 여러 세계를 넘나듦/2, 평면의 균등 분할,
3, 거울에 비춘 상/4, 변형/5, 칼레이도치클루스와 나선형
6, 3차원 환영의 파괴/7, 불가능한 형태/8, 무한성에의 접근
가상과 현실이 구분이 되지 않았던 원시 시대의 예술은 주술이었으며 주술이 곧 예술인 시대였다. 주술이 유일한 지식 체계이며 정보 저장과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기에 예술은 주술이 '가상'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탄생하였다.
예술과 진리를 연결하는 것,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미학적 변주곡의 중심테마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은 대개 이것으로 아름다운 가상을 변호하려 했다.
가상의 탄생( 고대 예술과 미학)
예술이 '아름다운 가상'으로 탄생한 원시 예술의 성격은 두 가지 양식의 대립으로 나누어진다. 이 때 최초의 미학자들이 등장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 둘은 예술이 '아름다운 가상'으로 탄생한다는 생각은 같았으나, '가상'에 대한 생각의 뿌리는 달랐다.
플라톤은 예술이 가상을 포기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가상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관점은 그 뒤에도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뒤섞이면서, 미학사에서 되풀이되며 얽힌다.
가상을 넘어 (중세 예술과 미학)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씀'이라는 단어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사이에 유사성을 발견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최초의 중세인이었다. 중세의 미학은 '빛'이 핵심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로티노스의 미학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기독교적으로 해석된 플라톤주의가 중세 미학의 골격이 된다. 중세 예술의 특징은 감각세계의 '가상'을 포기하고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중세가 끝나갈 무렵 등장한 아퀴나스는 가상과 현실을 분리하였다.
가상의 부활(근대 예술과 미학)
중세예술은 감각 세계의 '가상'을 포기했지만, 근대는 '가상'의 부활과 함께 시작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서로 모든 면에서 적대적이었는데 다빈치는 예술엔 반드시 따라야 할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고 믿었으며, 엄격한 자연 모방을 주장하였지만, 미켈란젤로는 보편적 규칙이란 없었기에 내면의 형상에 따른 창조를 주장하였다.(신풀라톤주의적 관념) 뵐플린, 미학의 창시자 창시자 바움가르텐(고전주의), 칸트의 미학(낭만주의), 헤겔의 '가상'의 종말까지, 미와 예술에 대한 관념차이에 따른 학파와 철학들의 뼈대를 읽을 수 있는 장이다. 헤겔은 예술은 절대적 진리를 드러내는 매체로 이념이 예술 속에서 감각적 형태로 드러난 게 곧 '미'라고 보았다. 진정한 미란 곧 예술미라는 것이다.
간략하게 원시시대에서 현대까지의 미학사를 정리해보았지만, 이 책 안에 있는 담겨 있는 철학의 흐름은 다 적지 못했다. [문명과 수학/민음은]에서는 인류 문명사와 수학의 발전사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학과 예술, 철학은 진리에 이르기 위한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을 향한 몸짓이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모두 예술가이며 수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였던 것은 궁극의 실재(진리)에 이르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 뿌리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수학, 철학, 이 모든 것을 통칭한다면 그것은 바로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미학적 변주곡의 중심테마는 바로 이러한 진리와 예술을 연결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수학과 예술,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미학사의 변천과 예술이론들을 잘 버무린 궁극의 미학서이며 미학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려주는 철학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칸트는 세상 사람들에게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것'을 배우라고 말했다. 진중권은 바로 그 맥락에서 미학이 아니라 미학적으로 사고하는 진짜 미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홍준의 추천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