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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웃긴 고양이다. 고양이주제에 주인을 우습게 생각하고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인간이란 존재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영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집에서 키우는 슈나우저 종의 우리집 강아지 쭈쭈를 보는 듯하다. 지가 사람인 줄 아는 쭈쭈는 잘때도 사람처럼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잔다. 발정 난 강아지처럼 싸돌아 다니지도 않고 주인의 밥상을 넘보지도 않는 매우 점잖은 강아지이지만 이웃집 개만 보면 짖어대는 통에 매를 벌기도 한다. 쭈쭈는 사람을 자신과 같은 종이라 생각하는지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를 않고 오히려 개만 보면 무서워서 짖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이 이름없는 고양이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이름없는 고양이는 세상을 달관한 정도가 아니라, 이름하여 도묘 道猫이다. 인간세상에 도가 튼 인간을 도인이라 하듯이 세상만물의 이치를 꿰고 있으니 도묘라 해도 얼추 어울리는 듯하다. 이 고양이는 마치 다른 별에서 온 400년 산 외계인 김수현이 말끝마다 ‘어린 것들이’, ‘나이도 얼마 안 먹은 것이’ 라고 말하는 것처럼 틈날 때마다 주인의 모습을 관찰하며 실체를 폭로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고양이가 주인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처럼 독자들이 관찰자 시점이 되어 고양이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소설의 철학적 장치이다. 고양이가 시대의 지성인이자 교양인이라 할 수 있는 '선생님'을 타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아주 익숙하였던 인간의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런 제 3자의 눈은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형체에 불과하였던 인간들의 본연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보인다. 문명의 이기와 교양인들의 위선을 고양이 눈으로 해부하고 철학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가장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별에서 온 고양이- 정신적으로 고매한데다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도묘道猫가 반대로 인간 눈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고양이로 비쳐지는 것을 볼 때 시계視界의 타자성 안에서는 모두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철학자적 은유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제3자의 시선'은 삶을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라는 총체적인 시각으로 시야를 확장시키는 인문정신과도 같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 작품은 소세키 전집 중에 처녀작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후 『도련님』, 『풀베개[草枕]』『태풍』, 1차 전집을 이제 다 읽고 나니,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세계가 고작 문틈으로 살짝 엿 본 세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가 문학에 담고 있는 철학의 깊이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새삼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철학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 소설적 시도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에 녹아있다. [도련님]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의 주인공이 [풀베개]에서 초탈(비인정)의 세계를 꿈꾸지만, 인간사의 감정(연민, 고통) 없이 예술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쳐가는 화공의 모습에서 , [태풍]의 도야 선생이 가난속에서도 문학사로서의 고매한 이상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듯이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인간을 낯설게 바라보며 철학자적인 사유를 유도하는 고양이의 현신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 관통하고 있는 '삶'의 본질을 다시한번 곱씹어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