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곧 기억하는 것이라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의  첫 도입부는  ‘나는 죽은 몸’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첫 장을 보며 나는 솔직히 웃음이 났는데,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여 우물가에 버려진 이 남자가 너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죽었어도 돈이 중요하다는 이 남자의 이름은 ‘엘레강스’ 로 그는 세밀화가이다. 궁정화원에서 금박장식을 가장 잘하는 세밀화가인 그는 왜 우물가에 , 가장 친한 동료의 손에 죽게 된 것일까?  

당신이 살인자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살해당한 시체가 범인을 잡아달라는 주문처럼 이야기의 전개는 독자들에게 한 명 한 명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독특한 서사기법으로 전개된다.  살해당한 ‘엘레강스’과 연관된 모든 것(thing)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카라와 개, 금화, 말, 세큐레 등  자신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편의 모노드라마나 미스터리 다큐를 보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금화나 개나 말은 몇 세기를 살아오면서  함께 했던 역사적 인물들과 문화를 들려주고 있는데 마치 터키에 전해내려오는 설화인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이야기꾼 세헤라자데를 만난 듯 하다.  이렇게 오르한 파묵의 독특한 서사형식은 추리소설이자, 역사소설로 터키의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구현해주고 있다.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의 축으로 진행되는데 한 축은 헤지란 천 년 되는 해를 기념하여 술탄의 세계를 베네치아 공화국에 보여주기 위해 술탄이 비밀리에 궁정화원의 세밀화가들을 부른 밀서제작과 관련된 터키의 문화이야기이고, 또 다른 한 축은 이 밀서의 책임을 맡고 있는 에니시테의 딸 세큐레와 조카 카라와의 러브스토리이다.

 

밀서에 참여한 궁정 세밀화가들은 밀서의 책임을 맡고 있는 에니시테의 지휘아래 고대로부터 내려온 <왕의 서>, <휘스레브와 쉬린>의 사랑이라는 그림을 통해 당시의 세밀화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 금박장식에 뛰어났던 엘레강스가 살해되자 불길한 예감에 밀서제작을 중단한 채 살해범을 잡기 위해 에니시테는 조카 카라에게 조사를 맡긴다. 그러던 중 에니시테도 살해당하게 되자 밀서는 아버지의 유언으로 딸 세큐레와 조카 카라에게 남겨지게 된다.

 

에니시테는 존경받는 세밀화가이지만 에니시테가 더 유명한 것은 세큐레가 이스탄불에서 가장 이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세큐레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카라는 오래 전 세큐레에게 사랑고백을 한 후, 쫓겨나다시피 이스탄불을 떠나고 12년만에 돌아온다. 그 사이 세큐레는 잘생긴 기마병과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지만,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한 남편은 4년째 소식이 끊긴 상태이다. 노환으로 죽어가는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 둘을 데리고 사는 세큐레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죽은 남편의 동생 하산의 집요한 애정공세에 구원이 필요할 즈음, 구세주처럼 나타난 카라를 본 후 세큐레는 카라와 옛사랑을 찾고 싶어한다. 12년을 떠돌아다녔던 카라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아름다운 여인 세큐레, 아버지와 같았던 에니시테와 밀서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세큐레와 다시 만나며 힘겨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에니시테 역시 살해당하자, 카라는 술탄으로부터 직접 살인범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면서 잠시 집을 떠나 있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스타일이 곧 불완전함이라고 말하고 있네.

두 번째 이야기는 완벽한 그림이라면 서명이 필요 없다는 걸 말하고 있지.

세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이야기의 교훈을 합한 것이네. 그러니까 서명과 스타일이란 결함 있는 그림을 그리고도 뻔뻔하고 어리석게 자만하는 자의 변명일 뿐이라는 거지.  

 

이슬람 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세밀화를 중심으로 터키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듣는 이야기는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터키의 국민 99%가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것은 모든 생활의 근간이 종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권에서는 대부분이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을 예술의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 것과는 달리  터키의 세밀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나타나게 되는 것을 금기시 하다못해 죄악시 하였다.  '스타일은 불완전한 것' 이라며 그림에 자신의 스타일을 나타내었다고 처형을 불사하는 것을 볼 때 터키 문화의 외곬수적인 모습을 느끼기도 하였다. 어떻게 예술에서  ‘독창성’이나 ‘창의성’이 죄악이 될 수 있을까? 세밀화가들의 화풍을 따라가다보면 이러한 영향들이 이슬람교와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의 터키는 커피도 악마의 음료라고 해서 금기시 하였고 세밀화가들이 유명한 이들의 그림을 모사하였을 때 원근법을 사용하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 원근법 역시 서양의 것)이 때의 그림은 원근법이 무시되어 그림에서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소설의 배경인 16세기 터키는 초상화(자신의그림)가 처음 선보이기도 하였는데 이것 역시도 에니시테에게 처음 알게 되자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문화의 충돌로 기인된 상황을 소설속에서 그대로 구현해내었다. 이 시대의 터키의 세밀화가들은  눈이 멀어 기억에 의해 그리는 그림을  신에게 부여받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 점 역시도 여러가지 면에서 문화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터키 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오스만 투르크 족의 전통 설화와 페르시안 문학과 서구문명과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문화적 갈등을 로맨스와 추리라는 독특한 장르의 혼합을 통해 소설로 구현해낸 《내이름은 빨강》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  거장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만큼이나 명작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자네의 에니시테 덕에 우리 모두는 초상화라는 말을 배웠네. 신이 허락한다면 언젠가 우리 자신의 삶을, 우리가 살았던 것을 두려움 없이 그대로 말할 수도 있겠지.“

“모든 우화는 우리 모두의 우화지. 인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