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건국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민주주의를 추진한 이래 80년대 결실을 맺은 민주화운동과 그 후 지속된 민주주의 심화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과 반목, 그리고 무한히 전개되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 분출에 따른 혼란, 이념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충돌, 여전히 유효한 지역갈등, 차이를 넘어 단절의 국면에까지 이른 세대 간의 갈등, 심각한 빈부격차에 따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깊은 골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들의 힘이 충돌하는 '권력정치(politics)가 한국정치 현장에서 여전히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억압받다 아무런 여과없이 한꺼번에 분출된 새로운 권익과 또 이 도전으로부터 기득권을 한사코 지키려는 기존의 권익 모두, 공동체와 공동선에 대한 고려 없이 권력투쟁에 진력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인이나 기업가, 노동운동가, 그리고 심지어 일반대중들에서조차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목도할 수 있다. 서로 대권을 차지하려는 정치인들, 서로 자신의 권익만을 관철시키려는 이해집단을,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자신의 생계와 돈벌이만 걱정하는 대중들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에서 갈등 대신 통합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는 민주화가 정치발전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충분조건은 권력정치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정치(the political)를 실천할 때 비로소 충족된다. 이 때 소통정치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더라도 설득과 소통을 통해 공동이익이나 공동의견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거나, 혹은 설사 동의에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상호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토론과 토의를 거쳐 결정에 도달하는 의사소통 과정과 구성원에 대한 상호인정 과정이 정치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소통정치는 '민주'뿐만 아니라 '공화'를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물론 '민주'와 '공화'는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며, 이 차이를 주목할 때 역사 속의 사회들이 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두 개념을 길항적으로 사용해 왔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근대사회는 민주주의의 발달과정으로 특징지워지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개인들의 권리보장과 그 권리를 권력으로 강화시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즉 민주주의는 자의적일 수 있는 권력을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독점되지 않도록 평등하게 배분하여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체제로서, 권력분립과 다사의 지배를 그 원칙으로 삼는다. 하지만 공화주의는 이런 분립속에서도 사회통합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지배를 수립하는 것인데 비해, 공화주의의 목표는 공동체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공화'의 덕목이다. 어느정도 '민주'가 진행된 상태에서 개인이나 개별적 집단의 권리와 자유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고 공동세계를 건설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참여, 소통, 헌정주의와 같은 '공화'의 요소들이다. 우리는 개인의 권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제기와 공동선 수립에 참여해야 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합의해야 하며, 이런 모든 과정들이 헌법 정신에 의거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대한민국 건국이념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방법이다. -서문 발췌-

민주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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