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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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비정한 사실주의와 불온한 초현실주의가 길항하는 난해한 텍스트였다. 광활해서 방위를 가늠할 수 없이 막연했고 조밀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몽롱했다.”

 

서울을 떠나온지 얼추 십년 더하기 일년이 되어간다. 시골에 와서 한동안 서울을 너무도 그리워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딱히 내게 친절하지 않았음에도 서울이 남겨준 그리움의 병은 꽤 깊었다. 시골의 일상은 너무 외로웠고 따분했고 나른했다. 지금은 시골이 주는 안락과 평안에 익숙해져 도시가 갑갑하게 느껴지지만, 불과 십년 전만해도 서울에 가고 싶어 밤새 베갯잇을 적시곤 하였다. 그러나, 서울이 왜, 그리웠고 무엇때문에 그렇게 오매불망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명동거리에서 데이트 하다가  인파에 밟혀 죽을 뻔하였고  명동 지하도에서 출입구를 찾지 못해 수십번 헤매다가 울었던 기억,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에서 4강 신화를 목격한 직후, 기쁨에 취해 난생처음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홀린 듯 프리허그를 하고 다녔던 기억과  민주주의 투쟁의 성지나 다름없는 명동성당앞에서 항시 대기중이었던 전경들이 아직 머릿 속에 남겨져있는 서울의 풍경이다.

 

 그런 서울을 하나의 난해한 텍스트로서 읽는 독창적인 실험  글쓰기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문화평론가 류신스타일 문화비평이다. 저자 류신은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을 오가며 느껴지는 서울의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독일의 유명한 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죽기 전 1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연구이자 미완의 작품인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벤야민이 파리의 물신적 성격을 읽어내었듯이 자본주의의 원초적 트라우마를 벤야민의 눈으로 서울의 아케이드를 탐색하고 벤야민의 사유이미지를 그려보며  '21세기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색다른 문화비평 포스트모더니즘을 완성하고 있다.  여기서 아케이드는 본래 열주(列柱)로 지탱되는 아치형의 천장을 가진 구조물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를 일컫는다. 이 아케이드는 19세기 초반 파리 도심의 상가 모델로 도입되어 번성하다가 백화점의 등장으로 몰락했다. (이 책에서 아케이드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뿌리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아케이드의 본질을 이렇게 직시했다.

"유리 아케이드는 꿈과 같인 외계(外界)를 갖지 않은 건축물이나 보행 공간을 말한다.(아케이드 프로젝트)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아케이드는 도시민의 일상이 영위되는 중요한 공공 영역이다. 가로를 실내로 포섭하는 아케이드는 대중이 거주하는 거리의 집이다. 이곳으로 자본의 욕망이 침투하고, 이곳에서 집단의 꿈이 전시된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고, 친구를 만나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한다. 이곳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싫든 좋든, 우리는 거의 매일 아케이드에 산다. 서울을 이해하기 위해 아케이드를 관찰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p12

  

서울이라는 텍스트를 벤야민화 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인물은  '도시속 이방인'이자  한국 최고의 거리 산책자인 '구보씨' 이다.  소설도 아니고 평론도 아닌 글, 소설이면서 동시에 평론인 글, '창작과 비평'을 합체하여 소설처럼 읽히는 재미있는 문학평론을 쓰기 위해 벤야민의 눈으로 서울을 보고 벤야민처럼 사유하기 위해 적합한 역할을 해줄 화자인 구보씨와 함께 서울을 산책하는 것이다. 텍스트를 읽는 것처럼, 서울을 이루고 있는 뼈대들 -영등포에서는 타임스퀘어, 버스, 63빌딩,  경북궁에서는 근정전 화랑과 통인시장, 광화문, 청계천, 서울광장 분수대, 롯데호텔에서는 백화점과 지하도, 이동통신대리점, 세운상가, 홍대입구에서는 르네상스 안경점, 편의점, 주유소, 롯데월드, 코엑스몰에서는 네일숍, 헤어숍 메가박스, 강남역에서 강남대로와 엔제리너스- 을  기존의 만들어진 이미지의 서울이 아닌, 우연하게 포착된 이미지의 파편을 통해 진짜 서울의 풍경을 독해한다.  경북궁에서 치욕의 역사를 지닌 아케이드로서 , 자본주의의 신화와 영광이 좌절된 유토피아의 세운상가 아케이드를 편의점, 가두판매점에서 읽어내는 피로 사회의 아케이드를 , 화려한 도시의 외관에 감춰진 맨얼굴의 진실들이 요소요소 파헤쳐진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의 과정은  잠들어 있던 도시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며 새롭게 사유이미지가 생성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마치 벤야민이 대도시가 소비한 것, 소홀히 한 것, 망각한 것, 망가뜨린 것, 버린 것을 수집하고 분류해서, 그 파편 속에서 의미를 구원하려고 하는 과정과도 같다. 구보씨는 이렇게 자본주의의 심장, 서울을 해체하고 조립하여 전혀 다른 의미의 서울을 만들고 있다, 

 

파리의 시인이자 도시의 외로운 산책자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읽고 있던 중 이 책을 만났다.  구보씨의 걸음에서 보들레르가 , 벤야민이 노래하고 있었다. 도시의 일상이 주는 허무와 공허, 자본주의의 물신이 대중에 주입하는 현혹의 이미지를 벗어나 창작과 비평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혀 서울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그 어떤 철학서보다 더 흥미로운 사유의 장을 선보인다. 저자는 서울을 외면할 도리가 없다면 서울을 이해하는 것이 삶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듯  서울의 뼈대를  파헤쳐 자본주의 삶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과정을 통해 도시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서울 곳곳에 감추어져 있던  자본주의의 공공 영역인 아케이드가  바로 우리의 삶의 본질이자 무늬이며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도시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아케이드'  실체라는 것을 마주할 때, 우리는 모두 보들레르가 되어 노래할 것이다.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오 더러운 수도여! ' 라고 ~-파리의 우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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