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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 어느 유쾌한 도덕철학 실험 보고서
뤼방 오지앙 지음, 최정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최대 다수의 행복이 선이라는 사고가 고착되어가면서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을 어쩌면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드는 ‘시장사회화’ 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하였듯이 사회의 근간이 시장경제에서 시장사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윤리의 개념자체 또한 모호해지고 있다. 칸트의 '옳음'이 '좋음'보다 우선한다는 기본테제는 다수보다는 개인의 권리의 소중함을 우선시한다. 개인의 권리를 구체화하는 도덕원칙들은 다수의 행복과는 무관하게 정당화될 수 있다. 옳음과 좋음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식은 바로 이 도덕적 힘이 작용한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릴때, '도덕'의 가치는 '좋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옳음'과 '좋음'의 영역이 혼동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지성집단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거두, 프랑스 현대 철학자 뤼방 오지앙은 바로 이점에 주목하여 도덕철학이라는 사고실험을 선보인다.
일테면,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다섯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용서될 수 있는가?
☞근친상간이 악의 없이 행해질 수 있는가?
☞사람 다섯 명이 서 있는 곳에서 폭주하는 전차의 진행 방향을 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변경하는 행위가 허용될 수 있는가?
☞國旗(국기)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행동은 부도덕한가?
실험 도덕철학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딜레마》 이 책은 실험 도덕철학의 19가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책에 담긴 19가지 딜레마는 '응급상황', '연못에 빠진 아이','무모한 장기이식', '흥분한 군중앞에서','사람 잡는 전차'등 딜레마에 빠져 있는 실험을 통해 '윤리'의 개념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은 윤리학에 대한 개론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 다만 실험 도덕철학이 도덕적 성찰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를 살펴볼 뿐이다. 저자는 도덕성찰에 작용하는 다섯 가지 경험적 소재를 통해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하고 있다.
1) 인간의 도덕적 직관에 관한 조사.
2) 인간의 도덕적 추론에 관한 조사.
3) 인간의 관대함 혹은 잔인함에 관한 실험들.
4) 어린이의 도덕성 발전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
5) 도덕적 체계의 다양성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들.
저자는 도덕적 직관과 도덕적 추론의 원칙을 도덕의 두 가지 기본요소를 상정한다. 그 위에 사고실험을 통해 다각도의 의문을 제기한 연유에 도덕 철학의 세 가지 고전적 입장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성의 윤리’와 칸트에게서 영감을 받은 ‘의무론’, 공리주의의 ‘결과론’으로서의 도덕을 살펴본다. 의무론자들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행위에 대한 절대적 속박과 금지의 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과론자들은 이런 속박을 맹목적으로 받들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가능한 한 최대의 선과 최소의 악이 존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탁월론자’, 즉 ‘덕성의 윤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윤리에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선함이 우선이며, 도덕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개인 자신의 문제라고 말한다.
유전자조작, 장기밀매, 인간복제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영화에서 배가 난파당한 후, 구조된 사람들이 살기 위해 가장 나약한 소년을 잡아먹는 것에 동의하였다. 결과적으로 소년의 희생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도덕적으로 이들의 행동은 '그릇'되지만, 다수의 '좋음'을 위해서 소년의 희생은 '옳음' 이다. 우리의 삶 역시도 때때로 도덕적으로 그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옳음이 꼭 좋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매순간 깨닫고는 한다. 행복한 삶은 옳음과 좋음이 동일선상에 놓여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할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옳음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매 선택의 순간에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다수의 행복이라는 슬로건아래 개인의 권리가 무참하게 희생되어 가는 윤리의 딜레마를 19가지의 실험을 통해 보면서도 봉착하게 되는 문제들은 '도덕'의 가치가 '좋음'(개인의 권리)에 근거하기 보다는 다수의 '옳음'이 항상 우선시되고 있다는 '딜레마'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어떤 도덕철학의 명쾌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사르트르가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에는 Choice(선택)이 있다고 하였듯이, 책에 예시된 19가지의 실험도덕의 선택은 철저하게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