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마음으로 -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이외수 지음, 하창수 엮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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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리뷰를 쓸 필요가 없는 책을 만난다. 오래 전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이란 책 리뷰에도 난 쓸 말이 없어서 책의 내용만을 발췌해 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고매한 정신에 다다를 수 없는 어떤 높은 경지를 이외수의 책들에게서 보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난과 배고픔이 씨앗이 되어 그 안에서 잉태된 숭고한 열매는 바로 그의 고매한 정신이자 문학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은 리뷰가 필요없다. 그냥 읽기만 해도 감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엔 충분하니까.

 

 이 책은 말그대로 이외수의 감성읽기이다.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외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팔딱거리는 감성과 쫄깃한 이성의 조합과 세상과의 소통뿐 아니라 범우주적인 소통까지도 이외수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읽을 수 있다. 이외수 문학의 중심은 단연코 '감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성을 네 가지의 주제(예술,인생, 세상, 우주)로 분류하여 대담하는 형식으로 소설가 하창수가 묻고 이외수가 답한 대담을 엮은 책이 《마음에서 마음으로》이다. 마지막 <어디로 가십니까>에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로 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문답집의 장점은 한 가지의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한 가지의 주제로 축약되며 문학과 삶과 인간에 대한 외연外延이 저절로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첫번째 이야기<예술>에서는 작가 이외수의 문학과 예술을 이루고 있는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이다. 이외수 문학의 중심이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예술이나 종교나 우주의 본질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예술은 삶의 아름다움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드려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행위가 된다.  예술로서 인간은 본성인 사랑과 원초적이고도 생래적인 감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래서 감성마을은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된다. 

 

육안肉眼의 범주에만 머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안靈眼의 범주에까지 닿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움,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일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인생>에서는 이외수 작가의 배고픔과 가난으로 점철 되어진 유년시절을 들을 수 있다.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 로 인생의 참뜻은 배우는 것에 있다는 말로 들렸다. 이번 장에서는 인생에서의 '조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데 인생에서의 조화란 '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본성과 같고, 그게 곧 아름다움이고 사랑이다' 라는 말처럼 세상은 아름답고자 하는 본성, 조화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들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만큼 인생에서 조화란 가장 중요한 섭리이다. 또한, 우리가 삶의 아름다움에 감화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코드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순수해져야함을 강조한다.

 

세번째 이야기 <세상>에서는 트위터 대통령이라는 세간의 별명에 대해 그는 글밥의 연장선일 뿐이며 세상과 연결해주는 창이라는 표현을 보며 문득 그의 사상이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태풍>등장하는 도야선생과 무척이나 닮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야 선생은 '속세의 사람들보다 인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끌어올려줄 책임이 있다'라며 자신의 문학적으로 높은 경지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문학이라는 고매한 정신이 아무 쓸모없다고 하였다. 그가 트위터를 하는 이유, 바로 그것과 다르지 않을 듯 하다. 자신의 도道를 전해주는 것이 문학이 지닌 궁극의 경지일 테니까.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도야선생(나쓰메 소세키)의 전신을 보는 듯 하였다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한 사람의 깨달음은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의 깨달음의 힘은 전파처럼 퍼져나가고, 누군가의 깨달음에 도움을 주게 된다. 깨달은 자의 수가 늘어나면 상층계의 상태가 변한다. 공자가 말한 홍도弘道와 같다. 도道가 인간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행함으로 도가 넓어진다

 

네번째의 장 <우주>에서도 역시 이외수만의 철학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림과 음악 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조예가 상당한 것을 보고는 이외수의 또다른 진면목을 보게 된 듯하였다.  질문하는 소설가 한창수의 날카롭고 심도깊은 질문이 이외수의 그런 정신적인 부분들을 잘 끄집어내고 있어 무엇보다 이 책은 이외수의 고매한 정신세계를 잘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베란다에 심어놓은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것을 한동안 가족 모두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죽어가던 꽃나무에서 꽃 한송이가 핀 것을 보고 가족들이 모두 탄성을 지른 적이 있다. 분명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핀 꽃 한송이는 우리에게 생명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감성感性이란, 이런 것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도 삶의 위대함과 풍요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감성, 이성, 오성-중 감성이 유일하다. 과학의 발달로 이성에만 치우치다 보니 원초적이고 생래적인 감성은 점점 퇴화하며 세상은 점점 비정하고 메말라가고 있지만, 우리에게 감성이 있는 한, 메마른 이성에서도 꽃은 필 수 있다. 이외수의 감성마을은 잠들어있는 우리의 본성, 즉 감성을 두드리고 깨워주는 날 선 감각을 선사하고 있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가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 참 잔인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굶어 죽은 예술가들에게는 눈물 한방울 흘려주지만 , 소위 잘나가는 예술가들에게는 도덕이라는 잣대로 단죄하고 싶어 안달이다. 책을 다 읽고는 문득 세상과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해오고 있는 문학가들을 위해서라도 감성마을은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고매한 정신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예술가들이 짊어지고 있는 그 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과 문학의 진정성을 알게 해준 감성마을 이외수 작가에게도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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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2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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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1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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