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나서영 지음 / 젊은작가들의모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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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화자는 주인수, 이아영, 김현숙, 나서영으로 이들의 복잡하게 얽혀있는 운명의 실타래는 햇빛 고아원에서 부터 시작된다. 햇볕 고아원에서 만난 이아영과 주인수는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도 친남매 이상의 끈으로 엮어 있다는 것을 운명처럼 느낀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은 아영이가 입양이 되는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하는데  다리를 절던 주인수가 정성으로 그린 아영의 그림을 아영은 인수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인수가 그려 놓은 아영의 그림은 어느 새 흉상으로 바꾸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아영의 마지막 모습은 인수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지만, 애증의 깊이 만큼이나 사랑 또한 깊었다는 것.  아영과 인수는 그렇게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서로를  향한 끌림만으로 젊음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총망받던 인재 나서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J.로나의 제자이자, 브랑 뒤 폴그에서 가장 주목 받는 학생이었다영감이 곧 생명이었던 화가 나서영은 작품 하나를 완성한 뒤 창작의 고통 가운데 메말라가고 있던 중 결국 탈진에 이르게 된다그에게 더 이상 작품에 대한 열정과 영감의 뿌리가 남아있지 않게 되자,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 채 방황하게 된다.  귀국하여 한국의 산과 바다로 배회하던 그의 눈에 띈 그녀 이아영은 나서영은 첫눈에 반하게 되고 우연히 솔뫼공원에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아영의 그림만을 그리는 주인수를 만나게 된다. 

 

태양이 저무는 석양에 입혀지는 신의 영역인 빛의 축제가 나의 손끝에서 그녀에게 선사됐다. 색들은 서로를 받쳐주고 어울리며 더욱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그녀에게 바쳐진 수천만 가지의 색에 그녀가 삼켜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할 정도였다. 환상이었다

 

솔뫼공원에서 주인수는 아영이를 그리며 아영이를 위한 그림을 그리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려 한다.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색과 빛으로 아영이를 그려주고 싶었던 주인수의 그림은 《환상》이란 이름으로 화가 나서영의 이름을 걸고 프랑스에 출품된다. 나서영이 주인수를 만난 시기, 아영은 오랜 우울증으로 의식불명이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나서영은 자신이 주인수라며 아영의 남자행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의식불명인 아영이를 유린하며 주인수의 그림으로 명성을 얻게 된 나서영. 이들의 얽혀있는 운명의 실타래는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비극의 종을 계속 울리고 있었다.

 

무척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삶의 가혹한 얼굴은 운명이라는 추의 관성으로 비극을 향해 질주하고 예술을 향한 집념이 어느 순간 악이 되는 찰나를 포착한다. 서영이의 소설 중 이렇게 비극적인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것 같다.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관록의 살이 붙었다는 뜻일까.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에 핏빛이 하나 스며들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악의 색을 입는다. 삶의 아주 조그마한 균열 사이로 비극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처럼, 운명이란 잔혹한 아름다움일지니......책과 함께 눈물이 방울져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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