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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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갖는 게 전부랍니다.

 

 그랬다. 오직 침대에서 죽는 것만이 꿈이었던 제르베즈의 삶은 쿠포를 만나는 동시에 짧은 행복 긴 불행이라는 전철에 올라타게 되었다. 함석공 쿠포가 지붕위에서 추락하게 되면서 눈앞에 다가왔던 제르베즈의 세탁소 꿈은 사라져간 듯하였으나, 이웃의 구제 母子(모자)의 호의로 꿈은 이루어진다. 배불리 빵을 먹고, 봉쾨르 여관을 탈출하며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칸을 갖게 된 제르베즈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행복에 도취되기 시작한다. 엄격하지만 올곧은 생활과 늘 상냥함을 지니고 있었던 대장장이 구제는 결혼지참금을 제르베즈에게 모두 털어주고 매달 조금씩 빚을 변제해 나갔다. 세탁소를 차리고 일꾼을 둘이나 두자, 제르베즈의 행복은 정점을 찍고 있는 가운데 불행은 이미 제르베즈를 향하여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 간 전남편 랑티에가 제르베즈의 행복을 갉아먹기 위해 다가 오는 중이었다. 배운 것 없고 순진한 노동자에 불과하였던 쿠포와 제르베즈는 랑티에의 감언이설에 속아, 조금씩 조금씩 가게를 털어 랑티에의 배를 불리우는 것으로 파멸을 자초한다.

 

불결함이 가득한 곳에서 입 한가득 주고받는 뜨거운 키스는 점차 쇠락으로 향하는 그들의 삶에 닥쳐온 첫 번째 추락의 순간과도 같았다.

 

랑티에가 주는 환락과 무절제한 욕망에 쿠포와 제르베즈가 잠식되어 가는 동안, 유일하게 순정과 순수를 지키며 제르베즈를 바라보고 있던 순정남 구제는 나락의 길로 들어선 제르베즈에게 여전히 돈을 빌려주고 있었고, 두 남편이 제르베즈의 등골을 빼먹는 것을  슬퍼하며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타락으로 물들어가면서도 순수한 영역에 늘 존재하던 구제와의 사랑은 제르베즈의 가슴 한켠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두려워했던 이웃들의 험담이 점점 두려워지지 않게 되고 이웃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게 되자, 제르베즈의 삶에는 나태와 빈곤과 가난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어 세탁소는 비르지니와 랑티에의 손에 떨어지고, 제르베즈는 가난한 이들이 거주하는 공동아파트로 이사 가게 된다. 몰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에 서서 가파르게 흔들리는 제르베즈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쿠포의 엄마는 이미 죽었고, 제르베즈는 동네에서 신용을 잃은지 오래고 쿠포는 알코올에 서서히 잠겨 들어가고 있었고, 시누이 로리외의 비난과 경멸은 극에 달했고 구제 부인은 아들의 戀情(연정)에도 불구하고 타락해가는 제르베즈를 외면하게 된다. 아무도 제르베즈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고, 제르베즈는 굶는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르베즈가 사는 공동아파트의 주민들은 그녀보다 불행하면 불행했지 더 행복하진 않았다. 여덟 살 밖에 되지 않는 랄리는 동생 둘을 지극정성으로 키우면서 술만 마시면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고, 이웃들이 아버지 욕을 할라치면 어른스런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편을 들었다. 쿠포는 알코올외에는 아무것도 소화시키지 못하였고 정신이 고장나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있었고, 장의사 바주즈 영감은 늘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녔다. 하나 뿐인 딸 나나는 거리의 여자가 되었고 , 제르베즈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이들의 삶을 보면서 위안하는 것이 고작 삶의 일과였다. 굶주림에 지쳐 집을 나선 제르베즈는 거리의 여자들을 흉내 내며 남자를 찾아 나서는데, 그녀가 만난 첫 고객은 가슴 한켠에 잠들어 있는 순수의 결정체이자 경건한 사랑의 , 구제였다. 그녀는 얄궂은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구제를 떠나간다.

제르베즈를 무엇보다 우울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바로 그 시각에 온 동네가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창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머리 위를 환하게 비추는 햇살이 달갑지 않은 법이다.

《목로주점》은 세계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레미제라블>의 인기를 뛰어넘은 소설이다.  아픈 아이를 위해 거리의 여자가 되면서  불렀던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판틴의 모습과 제르베즈의 모습이 오버랩되곤 하였다.  빅토리 위고가 그리던 민중의 삶과 에밀 졸라가 그리는 민중의 삶이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며  파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처참한 삶의 단면들에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여전히 도시의 노동자들은 이토록 처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에밀 졸라가 그리는 이들의 삶은 사차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다. 오히려 삶의 속성,  행복과 불행의 평행선을 달리다가 어느 한 순간 불어오는 삶의 바람에 비비꼬이게 되면서 불행으로 질주하게 되는 날 것의 모습에 두려움마저 든다. 자연주의 문학의 아버지인 에밀 졸라의 문학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천연의 문학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비극적인 면들을 통해 삶의 속성을 이해하도록 하며 오히려 그 비극을 통해 삶의 동력을 깨닫게 해주는  에밀졸라의 문학은 그 자체로의 위대함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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