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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L' Assommoir]은 연작소설로 유명한 소설이다. 서로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연쇄적으로 묶여있는 에밀 졸라의 연작소설은 1870년에서 1893년 사이에 스무 권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연작소설은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quart)' 라 칭하는데 이 스무권의 소설은 각각 독립된 주인공들이지만 마카르 가문으로 묶여 있는 하나의 족보이다. 에밀 졸라는 이 연작소설안에 한 시대를 풍미한 '사회'를 통째로 담으려 한 것이다. 참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국내문학과 국외문학의 엄청난 간극을 느끼곤 하는 것은 이런 대작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문학의 위대함을 보기 때문이다. 문학안에 인간의 총체적인 삶을 담으려고 했던 대표적인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 라고 했던 것처럼, 에밀 졸라의 연작소설에는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의 주체인 민중의 삶을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그대로 담으려 하였고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 책이 바로 ‘목로주점’이다. 목로주점은 루공 마카르 총서 일곱번째 소설이다.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라고 불리우는 《목로주점》의 원제는 아쏘무아르 [L' Assommoir]로 ‘때려눕히다.머리를 쳐서 죽이다’라는 의미의 동사 assommer의 명사형 assommoir는 도살용 도끼 혹은 곤봉이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해설p341) 또한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 벨빌에 있는 선술집 이름이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이 소설에서의 목로주점은 콜롱브 영감의 주점을 말한다. 목로주점이 지닌 의미는 이렇게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노동이 주는 삶의 고단함과 하루의 지친 몸을 쉬고 있는 휴식에도 불과하고, 민중의 삶은 결국 도끼처럼 충동적이고 머리를 쳐서 죽이는, 잔인함을 품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제르베즈의 삶이 그러하듯..

소설은 노동자들의 싸구려 여관 '봉쾨르'에서 ‘야심이 많고 낭비벽이 심한 ’ 랑티에'와 두 아들을 데리고 사는 제르베즈의 눈물과 한숨으로 시작한다. 일주일만에 들어온 랑티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제르베즈의 헌 옷 조차도 전당포에 맡긴 돈을 가지고 집을 나간다. 노동자들의 빈곤한 삶과 다툼의 연속인 봉쾨르 여관에서 가장 성실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젊었던 제르베즈는 비록 한 쪽 다리를 절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맑은 영혼을 가졌다. 랑티에에게 버림받은 후,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며 세탁소일로 생활을 꾸려가던 제르베즈에게 여관 꼭대기에 사는 함석공 쿠포가 청혼을 한다.
그래요, 자기 집 침대에서 죽고 싶다는 바람 정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니까요..... 난 지금까지 죽도록 고생만 해서 그런지 적어도 죽을 때는 내 집 침대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절하다는 이유로, 쿠포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쿠포의 제안에 따라 빚을 내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혼식 내내 떠나지 않던 비극의 그림자에 늘 불안한 제르베즈. 다행이도 결혼후 4년간은 핑크빛이 지속되었다. 늘 제르베즈를 방방(가느다란 다리)이라며 조롱하는 시누이 로리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둘은 성실하게 일해서 가난의 더께에 찌들어 있던 봉쾨르 여관을 탈출하는데 성공하였고 , 둘 사이에 '나나'가 태어나면서 제르베즈의 행복은 절정에 이르는 듯 했다. 쿠포가 지붕위에서 추락하기 전까지는....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라는 수식이 항상 따라다니는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은 무척 잘 읽힌다. 자연주의 문학은 한때 무성영화 상영시기에 나타난 문학사조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의 영상미를 느끼게 하는 치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에밀 졸라가 목로주점에서 선보이는 자연주의는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형식이지만, 19세기에는 매우 충격적인 형식이었나 보다. 신문에 연재되자마자 거친 공격과 맹렬한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에밀 졸라는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악취를 풍기는 우리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한 노동자 가족이 돌이킬 수 없이 전락해가는 과정’을 담고 싶었을 뿐이며 자신의 비난에 대해서는 ' 시간의 힘과 대중의 양식'만을 믿을 뿐이라는 말만을 남긴다. 노동이라는 민중의 삶을 제르베즈로 대신하면서 에밀 졸라는 '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 민중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목로주점을 읽으면서 과거에도 지금도 , 개인의 운명은 결코 자유 의지가 아닌 유전과 환경에서 한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같은, 삶은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던 제르베르와 쿠포의 꿈이 운명의 굴레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듯이.....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