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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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아주 가끔은 삶이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믿을 때가 있다. 나비의 사소한 날갯짓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아오거나  아주 사소한 꼬임이 인생의 모든 것을 꼬여놓곤 하는 것처럼, 삶은 예측불가능한 사소함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불가항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삶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 하여 일상생활의 굴레로 표현한다. 불교에서는 사회와 개인사이의 관계에서 쌓여지는 업의 이해가 깨달음의 첫걸음이라 한다. 《둔황》은 불교 문화의 중심지에서 펼쳐지는 조행덕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업을 이해하는 과정과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심도 깊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중국 송나라, 오로지 진사시험이 출세의 길이자 부귀를 얻는 지름길이었던 시대. 이제 막 32세가 된 조행덕은 자신만만했다. 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하루도 서책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고 몇 차례의 시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더욱 자신감이 넘쳐났던 그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어처구니 없이 , 또는 불가항력적으로 잠이 들어 버린다. 다음 시험까지 3년을 기다려야 하기에 홀로 망연자실하여 걷고 있던 그의 눈에 들어온 기이한 광경. 한 남자가 여자를 토막내어 판다며 알몸의 여인(서하)의 손가락을 두 개 자른 상태였다. 평생 서책으로만 세상을 보아왔던 조행덕에게는 천인공로할 장면이었는데 오히려 서하의 여인은 죽음앞에서 초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더이상 볼 수 없었던 조행덕은 서하여인의 값을 치뤄주고 자유롭게 해주자, 여인은 고마움의 표시로 서하문자가 쓰인 천조각을 선물한다. 죽음을 초개처럼 생각하는 서하여자와 자기들의 고유문자를 가지고 있던 서하는 운명의 이끌림처럼 다가오고, 어쩌면 이때가 조행덕이 막연하게 느낀 자신의 업을 이해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서하와 송나라와의 발화점이 되는 지역은 양주로 양주에는 다수의 서하인들이 토착민이나, 한족, 그 밖에 다른 이민족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서하의 수도인 흥경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소식을 들은 조행덕은 양주를 통해 서하의 흥경을 가기 위해 위구르 상단으로 위장하지만, 서하의 한족 부대와 마주치게 되자 조행덕은 자연적으로 서하의 한족 부대 병졸이 된다.

 

서하의 여인과의 만남이 조행덕 인생의 첫 번째 변곡점이라면 두 번째 변곡점은 조행덕이 서하의 한족 부대장 주왕례와의 만남이다. 무식하고 단순하지만, 전장에서 다져진 용맹한 전사인 주왕례는 병사 중 유일하게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글을 모르는 자신의 눈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주왕례와의 만남으로 조행덕은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과 죽음앞에서도 초연한 모습을 지니게 되며 주왕례의 후원으로 서하 문자를 공부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기도 한다. 

  조행덕 인생의 세 번째 변곡점은 위구르 왕족여인과의 만남이다. 위구르 족의 성을 함락되면서 숨어 있던 위구르 왕족 여인을 구해주게 된다.  위구르의 왕족여인을 본 순간 구해주어야 할 의무를 느낀 것 또한 조행덕의 업이라 볼 수 있다.  전쟁 한 복판의 왕족 여인을 돌봐주던 중, 흥경으로 떠나 서하문자를 배우고 오라는 주왕례의 명령으로 갑자기 떠나게 된 조행덕은 주왕례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왕족 여인을 맡기고 1년 약속을 기한으로 떠난다. 

 

1년의 기한을 넘기고 2년이 지나서야 주왕례와의 약속을 지키러 돌아온 사이, 왕족 여인이 죽었다는 말을 하는 주왕례의 말과는 달리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왕족여인은 서하의 왕 이원호의 첩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조행덕은 그저 운명의 장난이라 생각하며 자책하지만, 다음 날 성에서 뛰어내리는 작은 점을 목격하게 되는데  떨어지는 가느다란 곡선은 다름아닌 왕족여인이었다. 이후 왕족 여인은 조행덕이 가슴에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의 모습으로 뚜렷하게 각인 되어 진다. 주왕례 역시 여인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 짓는데 한 여인을 가슴에 묻은 조행덕과 주왕례와의 사랑과 우정은 눈에 보여지는 사랑이 아닌 종교가 지향하는 피안(彼岸)의 사랑이다.

 

 

 

날이 갈수록 행덕에게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또한 그들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인간의 무력함과 생명의 무의미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가 흥미로왔다 

 

타고난 업(業),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 번뇌의 속박을 풀고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면, 조행덕의 파란만장한 삶은 해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인간의 업을 그린다. 업을 이해하고 속세의 인연이 주는 번뇌의 속박을 푸는 경지에 다다랐을 때, 타오르는 불꽃 한 가운데서 경전을 필사하는 모습은 작가가 그리고 있는 열반의 세계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막에서 광할한 전투의 사투를 벌이던 서하족은 멸망하였으나, 20세기 중국 둔황석굴에서 발견된 경전은 그대로 보전되어 발굴되었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는 명언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덧없음은 말해 무엇하겠나. 소중한 문헌으로서의 가치와 동양학과 중국학의 근본을 뒤흔들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경전은 한 인간의 해탈에서 빚어진 역사의 산증인으로 남았다. 불교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둔황'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회교도와 서하, 송과 거란의 싸움, 서하와 한족과의 장렬하게 펼쳐지는 모래 사막의 전투는 삶의 고독과 맞닿아있고  한때 자신들만의 문자를 쓸 정도의 민족정체성이 강하였던 서하족의 멸망은 삶의 허무와 맞닿는다. 20세기의 둔황 안에 은닉 동굴에서 발견한 경전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아름다운 삶의 대서사시로 다시 탄생하였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속에서의 인간의 실존과 함께 삶의 불가항력적인, 운명에 대한 작가의 섬세함이 묘하게 가슴에 남는 책이다. 절제된 언어의 미가 주는 파문이랄까...  

재물과 목숨, 권력은 한결같이 그것을 소유하는 자의 것이었으나, 경전은 달랐다. 경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불에 타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족했다. 아무도 경전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그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었다. 타지 않고 지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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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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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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