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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개념정원 ㅣ 개념어 시리즈 (문학동네) 1
서영채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인문학을 만나기 전에 나는 소설만 읽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야기도 중독될 수 있는가 싶었었다. 난 끊임없이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한 달에 심하면 100개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당시 이야기에 빠져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떼울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유희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나는 이야기로 꽉꽉 채워 보냈다. 그때는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없었다. 담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인문학을 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야기를 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또 한번의 터닝포인트였다.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서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꽤나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책을 읽고 흘려보내곤 하던 시간을 담기 시작하자, 과거와는 달리 나는 책을 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깊이 인문학을 알고 싶고 더 많이 인문학을 품고 싶다. 나의 욕심에 부합한 책이 바로 이 책 《인문학 개념 정원》이었다.
오랜 기간, 시간의 공백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준 것은 다름아닌 ‘인문학’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난 아직도 시간의 오지를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인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사실 나역시도 인문학 전도사 이지성 작가처럼 ‘그냥 무조건 읽으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애석하다. 그것은 읽다보면 어느 순간 지식의 별이 반짝하고 빛나는 , 그러나 찰나인, 그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순간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책이란 것에 매료되기 시작하면 그동안 우리가 흘려보낸 무수한 시간들이 아까워지기도 하고, 왜 진작 이런 세상을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밀려오고, 또는 온갖 지루함과 나태가 허무의 옷을 입고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인문학은 온갖 장애물을 뛰어 넘고 위험천만한 순간을 견뎌낸 모험가들에게만 보석을 차지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처럼 그러한 시기를 견뎌낸 이들에게만 빛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우리 삶에는 끝이 있지만 앎의 세계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존재가 끝없는 것을 뒤좇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지식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장자
장자의 말대로, 지식의 세계는 끝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욕망은 사람의 마음속에 채워질 수 없는 근본적 결여를 강조하는 개념’이다(p57) 지식 역시도 근본적으로 결여되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욕망의 하나이다. 저자는 장자가 말한 ‘무한하고 위험하다는 앎(지식)의 세계’ 의 향연으로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
개념 정원의 첫 머리는 언어이다. 저자는 언어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철학 이론의 구도가 20세기의 거대한 성좌를 이루었기 때문에 언어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교차하고 있는 두 개념, 은유와 환유로 첫 발을 떼야 한다고 한다. 이 책과 연계하여 로제 폴 드르와의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20세기 현대철학>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도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언어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서로 다른 관점의 논쟁은 20세기를 관통하는 충돌이었고 , 하나의 논쟁은 러셀, 후설, 하이데거로 시작되어 과학과 철학을 논쟁하였고 또 다른 논쟁의 축은 ‘언어’였다. 말의 실재, 말과 사고의 상응, 언어의 구조, 언어의 기원 등이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테마였고 20세기에는 과학과 더불어 기본 쟁점이 되어간다. 이렇게 언어는 과학과 철학과 비견되는 하나의 큰 축이었다. 이렇게 언어를 시작으로 하여, 프로이트의 이론(무의식,의식,전의식, 자아,이드, 초자아, 방어기제,리비도, 성욕, 에로스,죽음 충동, 반복 강박,), 라캉의 욕망(상상계,실재계,상징계)의 개념을 정리해주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했던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을, 라캉은 이렇게 뒤집어 놓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이것은 무의식과 실재계의 세계를 염두에 둔 발언이거니와, 라캉은 이런 모습의 이성을 일컬어 데카르트적인 이성에 맞서 ‘프로이트 이후의 이성'이라고 불렀다.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라캉의 상상계에서 상징계에 접어드는 단계, 곧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던 아이가 말을 배우고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단계, 즉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계의 핵심기제나 칸트의 선험적 가상이라는 말이나, 이데올로기적인 형태들, 사디즘과 마조히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미메시스와 디에게시스, 근대 산물로서의 소설의 의미,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 패러디와 패스티시, 키치와 캠프, 헤겔의 변증법과 같은 단어들은 인문학에 꼭 등장하는 개념들이다. 그리고 항상 헷갈리는 용어들이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근대’라는 개념정리였다. <안티프래질>의 저자는 근대를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고 울퉁불퉁한 것을 부드럽게 하여 가변성과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정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근대’를 정의하는 부분이 학자마다 차이가 있고 근대에 대한 개념이 불확실하여 정리가 되지 않은 개념중의 하나였는데 저자는 ‘ 근대라는 말은 동시대를 포함하여, 전통사회 붕괴 이후 새롭게 생겨난 시대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현재성을 강조할 때는 현대라는 말이, 시대 구분의 역사성을 강조할 때는 근대라는 말이 좀더 선호된다고 한다. 요컨대, 근대성과 현대성,모더니티는 모두 동일한 개념이다. 이런 식으로 정리해 나가다 보니 어느 새 인문학 개념 정리가 머릿 속에서 자리잡아 가는 기분이 들었다. 인문학을 읽다보면 튀어나오는 낯선 단어들이 이제는 조금 두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전처럼 인문학을 읽을 때, 참고 사전으로 함께 읽으면 더 유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