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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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삶 다음에 섬에 어울리는 말이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섬은 언제나 비극을 품고 있다.  가파른 절벽과 불어오는 거센 바람, 걸핏하면 뒤집어지고 용트림하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살아간다는 것은 절해고도의 고독과 맞짱 뜨는 일과 같다.  질풍 노도의 시절,  지친 몸을 이끌고 섬으로 훌쩍 떠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 오로지 바다를 소망하며 떠난 나는 우습지만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다. 끝없는 지평선이 주는 지루함과 단절과 폐쇄의 공간이 주는 무력감으로 더 외로워진 나는 그 이후로 섬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섬에 다시 가고 싶다. 지금은 어느 섬이든지 섬이 주는 모든 것을 기꺼이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무연憮然한 눈빛의 자애가 섬을 찾은 이유도 삶의 척박함이라는 파도에 떠밀려 오게 되었다.  이름하여  땅끝섬’. 십년의 강사생활이 지나면 정교수의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지만  교수들의 알력 다툼과 권위주의에 지친 자애는 다시 한번 삶의 녹록치 않음을 깨닫는다. 게다가 오랜 부부 생활에서 간절하게 원하였던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입양을 결정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였다. 여러가지로 삶의 귀로에 서게 된 자애는 섬에서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소설의 서막이 시작된다.

 

어쩜우린 둘 다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참 고달픔 인생을 살아내는,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한때는 당신이 내 편인 줄 믿었고 나도 당연히 당신 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다운 줄 모르니 당신과 나 모두 청맹과니야. 모두 당신 탓으로 돌리진 않아. 두 청맹과니의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돌려야겠지. 골짜기에 눈이 켜켜이 쌓이고, 봅꽃이 아름다이 피고, 녹음이 짙어진들... 그것이 아름다운 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들은 내내 투덜거리겠지. 대체 삶이 왜 이러냐고.....‘

 

천연보호구역으로 빼어난 풍광을 지닌 아름다운 섬에서 자애가 맞딱드린 섬의 실체는 언제나 우울한 눈빛을 한 슬픔 짐승들이다. 벵에나 섬 개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도 슬픈 빛을 띠고 있다. 나라에서 지정한 천연보호 관광지로 땅끝섬이 지정되면서  물질을 하던 해녀의 섬은 골프카가 다니는 섬으로 변신한다.  섬을 한바퀴 도는 데에 40분 밖에 걸리지 않는 땅끝섬에서 관광객들 사이에 명물은 수산물이 아닌  짜장면,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주민들은 너도나도 짜장면이라는 메뉴를 추가하기 시작하면서 이익다툼을 시작하고,  생과 사를 넘나들며 물질 하나로 먹고  살아왔던 섬생활은  관광손님을 유치하는 일과 짜장면의 경쟁으로 이전투구의 장으로 바뀐다.  섬 개들의 우울하고 슬픈 눈빛은 이제 섬주민들의 눈빛이 되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 채 서로 이익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며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름다움이 도처에 널려있는 천연보호 관광지에 살고 있으면서도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이유로 짜장면을 연구하는 섬주민들의 우매한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빈방에 불이 켜지면 갑자기 홀로 남은 두려움과 고독에 몸서리치면서도 그 고독으로 인해 삶을 살아내게 되는 것처럼, 중년에  맞닦드린 삶의 이중성을 섬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마음에 살뜰한 위로로 다가온다. 마치 화폭에 섬세하게 붓놀림을 하여 완성해가는 한 점 한 점의 그림이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되어 서로 고개만 돌리면 아름다움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 고개를 돌리지 못해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이나미 작가의 연작 소설 《섬, 섬옥수》로 섬과 삶이 닮은 꼴임을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말이야. 사는 기 그기 암껏도 아이라는 거 알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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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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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8 1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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