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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책의 첫 시작은 독특하게도 끝맺음으로 시작한다.
더 읽지 말라! 내 말을 믿어야 한다. 나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책을 치워버릴 수가 없었다. 이건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나의 운명이다.
나의 삶이다.
고통의 최정점에 서서 죽음이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자. 그 남자가 나다.
그렇다. 이 책은 정정하건데 <눈알 수집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남자의 이야기다. 경찰관이었던 알렉산더 초르바흐가 운디네 신드롬(호흡병)을 앓고 있는 아기 톰을 유괴한 여자 앙겔리크를 총으로 쏜 이후 , 죄책감과 고통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다.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범죄 전문기자가 된 알렉산더 초르바흐는 세 명의 여자와 네 명의 아이를 죽이고, 왼쪽 눈알을 파 가는 눈알 수집가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시작된 네번째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살인과 유괴!
나의 운명은 눈알 수집가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었고, 이 끈은 나를 매분 더 죄어오는 듯 했다.
과거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지 않았던 알렉산더는 정기적으로 정신 치료를 받고 있으며 병원에 호흡기만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계시고 이혼 직전에 있는 아내 니키와의 사이에 이제 막 열 살이 된 율리안이 있었다. 아이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 들렸다가 눈알수집가가 나타났다는 무전제보에 한걸음에 달려간 살해현장은 사실 경찰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일급비밀 장소였으며 그곳에서 엉뚱하게 알렉산더가 하루 전 잃어버렸던 지갑이 발견되고 , 범인이 찍혀있다고 믿었던 CCTV에는 알렉산더와 똑같은 옷을 입은 또 한명의 알렉산더가 찍혀있다. 사건의 모든 정황은 알렉산더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었으며, 동료 프랑크의 전화로 알렉산더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 아지트가 있는 곳으로 도피하는데 그곳에서 자신을 찾아 온 정체모를 묘령의 여자 알리아를 만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된다.
남은 시간 45시간 7분
그를 찾지 못하면 그가 당신을 찾아간다
알리아는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신체 접촉을 통해서 특정인에 한하여 그 사람의 과거를 읽을 수 있게 되는데 자신의 물리치료실에 하루 전, 눈알수집가가 다녀갔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전화로 알렉산더가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게 되었는데 눈알 수집가의 허리를 치료하면서 보게 된 광경은 ‘한 여자가 전화를 받고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중이었다는 말과 남편으로부터 지하실에 가지 말라는 대화와 동시에 여자와 아이가 순서대로 살해당하는 장면'을 영화의 솔로모션처럼 아주 느리게 보게 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또한 이 장면은 이 소설에서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는 결정적 모티브가 되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예견조차 하지 못하게 긴박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용의자 신분이 된 알렉산더와 유령의 존재와 같은, 어디서도 존재하지 않는 알라이 또한 의심 투성이의 존재이다. 알라이의 진술에 따라 유괴당한 아이들의 위치를 추적해가며 범인이 남긴 유일한 단서이자 실마리인 ' 살해장소에 남긴 타이머'가 가르켰던 ‘45 시간 7분‘이라는 시간안에 유괴당한 아이들을 찾아야 하는 압박감과 긴장감으로 팽팽한 전율이 흐른다. 나 역시도 알렉산더의 정신분열을 의심하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알렉산더가 용의자일 것이라 어림짐작하다가 아무도 알라이의 존재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다시 또 알라이가 범인이라 여겨지기도 하는, 범인과 함께 하는 숨바꼭질을 하는 듯 미궁투성이들로 가득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범인에 대한 궁금증과 예측할 수 없는 반전들로 인해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행간을 무작정 따라 읽게 되었다.
한동안 독일 스릴러의 대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독일 스릴러 작가에게는 무한 신뢰가 형성되곤 하였는데 이 책의 저자는 ‘독일 사이코스릴러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다. 사이코스릴러라는 장르를 재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의 예리한 심리 묘사와 독자의 무의식까지도 활용하는 치밀함,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반전이 ‘피체크 표’ 스릴러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으로 '피체크'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일요일에 너무 추워진 기온탓에 꼼짝도 하기 싫어 이불을 돌돌 말아 누워 머리만 내밀고 읽기 시작한 《눈알 수집가》는 제목 때문에(너무 무셤) 미뤄만 두고 있다가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읽을 생각에 집어들었는데 흠, 이 책은 킬링타임용이 아니라 45시간 7분동안 아찔하고도 아슬아슬한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하면서 숨소리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킬링타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