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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욕망, 우리의 일상에서는 터부시 되는 말이지만, 우리의 총체적인 삶에서는 너무도 친숙한 말이다. 수많은 문학작품과 인문서들의 주요 타깃이 되는 ‘욕망’이 이번에는 인터넷 서평가로 유명하신 로쟈님의 주 타깃이 되었다. 이 책 《아주 사적인 독서》의 부제는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다.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욕망하는 근본적인 이유, 그것은 인간이 결핍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셋을, 셋 다음엔 넷...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가 무한대인 것처럼, 또는 우주가 무한대인 것처럼 다다를 수 없는 것이 욕망의 끝이다.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채우거나 탐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다. 진실은 무한대의 우주에 우리가 다다를 수 없듯이 욕망이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이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이다. 애초에 인간은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그야말로 욕망의 최고봉이자, 세기의 스캔들로 잘 알려진 《마담 보바리》,《주홍 글자》,《채털리 부인의 연인》, 《햄릿》,《파우스트》,《석상손님》, 이렇게 7편의 고전이 실려있다. 이 고전들의 공통 텍스트는 욕망으로 이 고전들을 통해 우리들의 억눌려 있던 감각들에 심폐소생술을 하여 삶의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 ‘보바리즘’을 낳을 정도로 마담 보바리처럼 현재에도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작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전 읽었을 때 그저 보바리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 못하는'자신은 다르다고 스스로 믿는 능력'-이 병리학적 양상이라 생각해왔던 것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아가 저자는 ‘사회가 굴러가는 어떤 법칙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의의는 이들의 욕망이 가지고 있던 ‘보바리즘’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려 하는 ’ 리얼리즘의 문학으로서의 가치이다. ‘욕망’이라는 텍스트에 ‘삶’이라는 현실을 대차대조 하고 있는 저자의 고전읽기를 통해 고전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재생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솔솔하였다. 엠마가 소설이 주었던 환상의 세계를 현실에서 끊임없이 욕망하였지만,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는 길은 욕망이 가지고 있던 허구성과 모방성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은 《주홍글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주홍글자가 가진 ‘간통녀’라는 각인의 글자이지만 간통의 A가 ‘Angel'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역시도 욕망이라는 텍스트에 담겨져 있는 우리 세계의 진실이 숨겨져 있는 장치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성애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도 기존에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남녀간의 성적 욕망의 관계가 합일을 이룰 때 -정신과 육체가 일치되어야 하는 관계-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의 예찬이 담겨져 있는 고전이다. 여기서 궁극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단연, 파우스트이다. 마담 보바리는 환상과 현실 사이의 욕망을, 주홍글자는 사회 규범에 길들여진 욕망의 그림을, 채털리 부인에서는 남녀간의 성적 욕망이라 한다면, 파우스트는 , 괴테 일생을 이 책 한권에 담으려 했던 것처럼 다양한 욕망들이 대거 등장하여 욕망의 끝을 폭로하고 있다. 그것은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타는 순간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삶의 본질이란 것을 깨우쳐주려 함이다.
위에 실려 있는 일곱 편의 고전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것은 연암집을 읽고 나서 쓴 홍길주님의 글이었다. 글은 변함이 없지만, 내 모습이 늙고 변하여 가듯이 글도 얼굴을 따라 변한다는 말씀처럼 고전은 항상 변함이 없지만, 그 고전을 읽는 '나'는 항상 변하고 있었다. 고전과 삶을 대차대조하여 가듯 읽을때마다 고전에서 얻는 지혜 또한 변해갈 것이다. 아주 사적인 독서, 그것은 누구의 독서도 아닌 고전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저자 이현우님을 통해 고전 깊숙한 밭고랑으로부터 싹트는 삶의 씨앗을 하나 얻게 되었다. 그 씨앗을 가슴에 품고 아주 사적인, 나만의 독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소망해본다. 우리는 숙명처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났으며 '나'라는 역에서 '타인'이라는 전차를 갈아탄 후,'함께' 하는 역에 지나쳐야만 비로소 삶의 본 모습에 다다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역을 지날 때마다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은 고전이라는 조타수임을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책을 펼쳐 그 사람의 글을 읽으니 곧 그의 글은 바로 지금의 나였다. 이튿날 또 거울을 꺼내 살펴보다 책을 펼쳐 그 글을 읽으니 그의 글은 곧 이튿날의 나였다. 이듬해 또 거울을 떠내 살펴보다 책을 펼쳐 그 글을 읽으니 그의 글은 곧 이듬해의 나였다. 내 얼굴은 늙어 가면서 더욱 변해 가고 변하면서 그 옛 모습을 잊어버렸지만, 그 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읽을수록 더욱 색다르니 내 얼굴을 따라 닮았던 것이다.-홍길주 -[연암집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