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의 가능성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한동안 세상과 담을 높이 쌓고 지낸 적이 있었다. 세상이 싫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싫어서도 아니고, 젊은 날 너무 바쁘게만 살아온 것 같아 남편과 나는 산꼭대기에 집을 짓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몇 년을 망중한을 즐기며 살았다. 아이가 커가면서 교육 문제와 직업의 변화로 다시 세상으로 나온 후, 우린 말그대로 문화쇼크를 경험하게 되었다. 매일 같이 여과 없이 보도되는 사건 사고에 충격을 받았고, 잊고 지내던 매스미디어의 세상은 너무 자극적이었고, 너무 빨랐고, 게다가 너무 잔인했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지만,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의 명암과도 같이 세상은 디지털이지만, 우리만 아날로그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때가 아마도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처음으로 절망을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 이어진 문화쇼크는 계속 우울과 절망을 남겨 주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본 광경으로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손을 맞잡고 도서관을 가득 메운 광경을 보며 이제까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아왔고 세상을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 왔던 나의 어리석음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잊게 만들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의 감동은 내가 그동안 한국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두 날려버리고 책에 고개를 숙이고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가 우리나라의 미래이자 희망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했다. 세상의 또 다른 명암, 밝고 어두움이 공존한다는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어두움만을 보며 살아왔다는 부끄러움이 엄습하였다. 누군가 가 인류가 책을 읽는 한 멸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이들의 책 읽는 모습은 인류의 위기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희망처럼 보였고 도처에 널린 우울과 절망이라는 잿더미 속에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처럼 경이로왔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도미니크 불통은 《또다른 세계화》에서 한국이 세계화를 이끌 수 있는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과 세계적인 IT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문화적 정체성을 잘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본 적이 있다. 이 부분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저서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멀지만 가까운 나라 일본이 고추장과 된장, 김치를 세계에 상품화한 뒤에라야  뒤늦게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이라고 뒷북치던 과거처럼, 우리나라는 스스로의 전통 문화에 대한 인지가 한템포 느린 느낌이 든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미국 태생으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부하고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문명학 박사를 받은 석학이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임마누렐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세계 속의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그 어떤 나라보다 높고 모든 부분에서 월등하지만 정작 한국인들 스스로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진언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인들이 모르거나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장점을 소개하며 세계화의 주역으로서 한국을 위한 문화 정체성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인이 국제 사회에 꼭 설명해야 할 정체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과거이다. 한국의 문화와 전통은 진귀한 보물과도 같지만 그 보물을 세계에 소개하면서 한국의 정체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동안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있던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비롯되어 역사적 트라우마로 자리잡아 있는 ‘새우 콤플렉스’를 먼저 극복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가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물리적 단절뿐만 아니라, 과거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 사이에서 발생하는 잠정적 단절이라는 , 이 두 개의 단절 현상은 한국이 스스로의 엄청난 장점과 자산을 활용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국이 지난 100여 년 동안 겪은 민족적 고통과 그 때문에 발생한 새우 콤플렉스는 선진국 개념에 대한 혼란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선진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어떤 경우 그것은 미국을 지칭하며 가끔은 유럽과 일본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이 선진국을 어떤 유토피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당한 격차를 벌리면서 한국을 능가하는 ‘선진국’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선진국을 신비한 세계로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오해에서만 존재한다.

 

게다가 현재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개념, 즉 외국인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존재감있는 개념이 없다고 지적하며 일본이 음산한 암살자 집단인 ‘닌자’나 ‘사무라이’를 긍정적 보편화로 만들어 세계의 무대에서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처럼 , 한국의 ‘선비 정신’은 치유와 회복의 처방으로서 세계에 충분히 어필 가능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예학, 주자학,옛 골목과 전통시장,등은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한국만이 간직한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저자는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을 외국인도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워드 프로세서에 한글 입력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과  농업 분야에서의 풍부한 전통적 지혜를 살려 전통 유기농법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 전통 건축을 세계화, 아름다운 한국의  농촌 지역을 활성화와 같은 한국 문화 자체를 세계화 할 수 있는 고견을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숨겨진 잠재력을 두고 저자는 <법화경>의 '무가보주'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자신의 품에 보석이 있는지도 모르고 평생 가난하게 산 선비처럼 우리나라는 보석을 품에 안고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보석, 그것은 우리나라 그 자체이다. 저자의 말대로 한국은 최고의 문화유산을 가슴에 품고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우매한 선비다. 그 진귀한 보석을 깨달아야 할 다음 차례는 바로 우리들이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당신들 앞에 보석이 있는데 왜 그걸 찾으려고 하지 않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