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 정본에 충실한 복원
범립본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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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의 모든 맛을 다 보아야 한다. 그러면 담박함을 좋아하게 돼 굳이 부귀한 모습을 지니려 하지 않는다. [호안국]-p94

 

성실하면 후회가 없고, 용서하면 원망이 없고, 온화하면 척질 일이 없고, 참으면 욕될 일이 없다. 법을 두려워하면 아침마다 즐겁고, 천하공론을 속이면 날마다 근심한다. 소심은 천하를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대담이 전제돼야 하고, 대담은 촌보의 이동도 어렵게 여기는 소심이 전제돼야 한다. [경행록]-p159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다. 물이 한 번 쏟아지면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듯이 성품도 한 번 놓아 버리면 되돌릴 수 없다. 물의 제어를 반드시 제방으로 하듯이 성품의 제어도 반드시 예법으로 해야 한다.

 

일체의 모든 번뇌는 모두 참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때가 닥치거나 대상을 대할 때 그 표책은 미리 밝게 보는데 있다. 부처는 말다툼하지 말라고 했고, 유가경전은 다툼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쾌활하게 사는 좋은 길이 있는데도 세상에는 그 길로 가는 사람이 드물다. -181p

 

널리 배우면 고루함에 빠지지 않고, 뜻을 돈독히 하면 세속으로 흐르지 않는다. 간절히 물으면 아는 것이 정밀해지고, 가까운 것으로 그 이치를 미뤄 짐작하면 깨닫는 것이 실질에 가까워진다. 인 仁이 바로 그 안에 있다. [자하]-p188

 

 

 

일이 비록 작을지라도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순자 修身 p205-

 

무릇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 노마 駑馬도 10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 준마를 따라 잡을 수 있다. 학문을 '기다림'이라고 할 경우 다른 사람이 도중에 멈춰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그곳으로 나아가면 혹 지속遲速과 선후先後는 있을지언정 어찌 함께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발걸음일지라도 쉬지 않으면 비록 절름발도 천리를 갈 수 있는 것이다. 흙을 쌓는 일도 중지하지 않으면 언덕과 산을 크게 만들 수 있다. 갈 길이 비록 가깝다 할지라도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다다르 수 없다. 일이 비록 작을지라도 이룰 수 없다.

 

일은 끝까지 다 할 수 없고, 세력은 끝가지 의지할 수 없고, 말은 끝까지 다 할 수 없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릴 수 없다. 복이 있다고 끝까지 누리려 하지 말라! 복이 다하면 몸이 궁해지니라. 권세가 있다고 끝싸지 행사하려고 하지 말라! 세력이 다하면 원수를 만난다. 복은 늘 스스로 아껴야 하고, 권세는 늘 스스로 공손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교만하고 사치하면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장상영]-p244

 

일생의 계획은 근면히 공부하는데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고,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의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공자의 삼계도]-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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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은 유가사상을 토대로 수제치평修齊治平의 이치를 논한 게 특징이다. ‘수제’만 떼어 놓고 보면 『채근담』과 통하는 바가 있으나 입신양명을 적극 권한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명신보감』은 천하를 경영코자 하는 사대부들의 취향에 부합한다. 이와 달리 『채근담』은 입신양명을 멀리하는 까닭에 ‘일사’의 청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선비들의 취향에 부합한다. 『명심보감』이 옛 성현의 말씀을 모아 놓은 ‘타인의 말’인데 반해 『채근담』은 저자인 홍자성洪自誠 자신이 터득한 처세의 이치를 종합해 수록한 ‘자신의 말’에 해당한다.

 

저자가 위에 밝힌 바대로 채근담은 홍자성이 스스로 익힌 처세이라 한다면  《명심보감》은  채근담과 대조하여 타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조선조 사대부들이 채근담보다는 명심보감을 더 즐겨 읽은 이유도 채근담이 수신修身하기 좋은 책이라 한다면 명심보감은  ‘개인의 수양은 물론 가정과 사회 및 국가를 원만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금언’들이다. 저명한 정의의 철학자(나의 애칭^^..), 마이클 샌델은 정의는 시대불변이며 시대가 바뀔 때마다 대두되는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현재의 자본주의) 사상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바로 정의라고 하였다. 명심보감은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이다. 시대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진리, 이것이 바로 정의이며 그 안에는 항상 ‘선함(밝은 마음)’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명심보감이다. 이렇게 정의는 시대를 뛰어 넘는 보편적인 가치이며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물질 만능주의가 극에 달해 있고 개인이기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풍토 속에서 가치 지향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잘된 사람은 착한 말을 하고 착한 것을 보고 착한 일을 한다. 하루에 세 가지 착한 일을 하면서 3년을 보낸다면 하늘이 반드시 복을 내릴 것이다. 못된 사람은 나쁜 말을 하고 나쁜 것을 보고 나쁜 일을 한다. 하루에 이 세 가지 나쁜 일을 하면서 3년을 보낸다면 하늘이 반드시 재앙을 내릴 것이다. ‘ -[태상감응편]

상권
1편 선행을 이어라 계선繼善
2편 이치를 읽어라 천리天理
3편 천명을 따르라 순명順命
4편 효도를 다하라 효행孝行
5편 자신을 살펴라 정기正己
6편 분수를 즐겨라 안분安分 
 7편 마음을 지켜라 존심存心
8편 성정을 삼가라 계성戒性

9편 학문을 익혀라 권학勸學
10편 효자를 길러라 훈자訓子
 하권
11편 심신을 다져라 성심省心
12편 교육을 세워라 입교立敎
13편 정사를 펼쳐라 치정治政
14편 집안을 챙겨라 치가治家
15편 의리를 보여라 안의安義
16편 예의를 지켜라 준례遵禮
17편 믿음을 얻어라 존신存信
18편 언행을 삼가라 언어言語
19편 붕우를 만들라 교우交友
20편 부덕을 행하라 부행婦行

 

부록 1. 청주본의 『명심보감』 보유補遺

1. 증보增補
2. 팔반가八反歌
3. 속효행續孝行
4. 염의廉義
5. 속권학續勸學
부록 2. 유득화庾得和 발문跋文

신명神命은 하늘의 뜻으로 하늘의 밝음을 의미하는 내 몸의 신명神明과 같다. 내 몸의 신명을 끌어내려면 우선 내 몸부터 온전히 할 필요가 있다. 몸과 마음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심신心身을 함께 닦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109

어제 읽은 이승욱의 [포기하는 용기]의 첫머리에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명심보감을 읽으면서 머리 한켠에 자꾸 떠올랐다. 과거 수 백년전과의 가치와 전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그닥 행복하다거나 지혜롭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가정이 잘 된다는 말도 아주 먼 옛말이 되었고 , 맹자가  후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고 하였지만, 육아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기피되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미덕이라 하지만 폐륜 범죄가 판을 치는 사회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에 동화된 호리지성(好利之性)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 이렇게 지나치게 물질에만 가치를 두다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듯하다.  가치관 확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사회의 수많은 부침 속에 쉽게 좌절하거나 소심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가게 된다. 그렇기에 가치관의 확립과 스스로 가치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명심보감》이나 《채근담》과 같은 고전으로 바른 가치관과 밝은 마음(정의)를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수만 가지 법을 구할지라도 몸을 닦는 것만 못하고, 수천 가지 일을 할지라도 입을 다무는 것만 못하다.'(p107) 라고 하였듯이,  수신修身(몸을 닦는 것)은 인생이라는 비행기를 제대로 몰게 해주는 부조종사역할을 해준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생의 항로가 덜컹거릴지라도 , 쉽게 항로를 되찾아주는 나침반과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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