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용기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이승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나의 포기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한 회사만 십년을 다녔다. 이후,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 온 지가 올해로 딱 십년이 되는 해이다. 경상도와 서울이라는 거리만큼이나, 인문환경의 변화는 지리적 거리보다 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우선 경상도 사람들의 직설적인 말투, 이것은 여전히 적응불가능하다. 서울 사람들의 나긋나긋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듬뿍 담긴 대화에 익숙하다보니 무뚝뚝하고 화가 나 있는 느낌이 너무도 생경했다. 평상시에도 거칠고 지나치게 솔직하여 불편함이 느껴지곤 하였는데 흥분하거나 뭔가 불만스러운 부분을 접수 받을 때, 나는 단지 전화 받았다는 이유로 심하게 욕을 들어주어야 했다. (이런 날은 정말 심하게 우울해지곤 한다.)이런 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잊는 것,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내 욕망의 한 부분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그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흐느적흐느적 거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듯이 시골에 적응하려 했던 나의 삶도 그러하였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나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횟수가 잦아지자 의외로 이런 방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배알이 없거나,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곤 하여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배알이 없거나, 성격이 좋은 사람이 아닌데, 경상도에 적응하기 위한 나름의 포기가 나를 좋은 포장지로 싸주는 계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도 매일을 하루같이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안에서 나름의 포기의 노하우가 생겨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나자, 내 삶은 전보다는 더  여유로워졌다.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서 첨하자면, 지금은 경상도를 무지 싸랑한다.)

 

 #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심리학을 공공재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저자의 《포기하는 용기》는 우리의 욕망이 타자에 맞추어있다는 것을 시작으로 첫 장을 열고 있다. 이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질문인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의 질문을 떠올려보게 된다.

 

 

지금,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낼 수 있습니다. 눈치 채셨나요? 우리가 최초로 ‘인식’하는 인간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이건 아버지이건 할머니이건 상관없이) ‘타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인간 최초의 비극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인식된 개체가 자신이 아니라 타자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끝없는 욕망의 이면에는  ‘자아’의 욕망이 아닌 타인에게 길들여진 욕망이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씌어지는 욕망의 페르소나, 가족이라는 1차적 관계의 틀과 타자가 원하는 모습의 자아(나)를 형성하게 되면서 우리는 '자아'가 아닌 '타자'의 욕망에 저절로 맞추어져 살아가게 되는데 저자는 타인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타자의 욕망’을 버려야만 자신 내면안에 깃든 참된 진짜 욕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참된 욕망,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분명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 자유로운 삶과 조우할 수 있게 된다. 니체가 모든 것을 부정한 뒤에 강한 삶의 긍정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타자에게 맞추어진 모든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 뒤의 세상은 분명 실존적이고도, (플라톤의) 실재계와 같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낯설게 바라보기를 통해  더 자유롭고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삶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과정은 총 4장( 1장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2장 나는 누구로 사는가?3장 나는 왜 불안한가?4장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로 구성 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복합적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현대인들이 호소하는 우울과 고통의  근원적인 존재불안에 대하여 인문학적인 치유와 방법을 모색해주고 있다.  

 

책임이란, 내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았던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괴로울까요’ 라고 징징대지 마세요. 내 삶을 위해 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침 뉴스에 최근들어 자살률과 우울증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며 씁슬함과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저자는 고통의 원인은 삶의 균형이 깨어진데서 오는 것이며 우리는 욕망과 현실의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살면서 타자라는 부분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란 매우 힘들지만, 저자의 말대로 타자에 맞춰 있는 욕망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향해 삶을 재정비하는 과정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의 삶 역시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 스스로 삶을 재정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늘 폐쇄적인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한번 쯤은 타인을 향한 모든 욕망의 근원적인 몸짓을 멈추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진짜 필요한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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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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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17: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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