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가족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사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기분이 든다. 존속 살인 사건과 영아 살해가 잊을 만하면 전파를 타는 것을 보며 가족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오죽하면, 가족 중의 누군가가 살해되면 1차 용의자는 무조건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정의가 내려지겠는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가족’은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異物(이물)의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일본 작가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름을 알고 있는 몇몇의 작가중에 기억되는 미나코 가나에는 고백을 통해 만나보았다.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겼던 《고백》에 이어 읽게 된 《모성》의 첫 문장은 ‘저는 딸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것이 무슨 욕이될까 싶었지만, 이 고백은 어쩌면 처절한 후회와 자식에 대한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그 금지옥엽의 딸이 자살을 시도했으니까...... 스물 네 살, 회화 교실에서 릴케의 시를 좋아했던 다도로코를 만나게 되면서 결혼하기까지 그저 보통이었던 삶의 무늬를 써가던 ‘엄마’의 삶은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가 손녀를 구하기 위해 불이 난 곳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을 하면서 조금씩 이지러지기 시작한다. 엄마와 행복하게 살던 고지대에 세운 꿈의 집은 산사태로 인해 사라졌고 ‘엄마’(할머니)의 생명을 대신하여 남게 된 '딸의 생명'은  엄마에게 목구멍에 걸린 생선 잔가시처럼 남겨지게 되고, 형체가 없던 잔가시는 엄마의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은 채 서서히 곪아 가고 있었다. 이후, 시어머니와 살게 된 엄마의 가족. 소중한 피와 살을 나눈 친엄마의 죽음이후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던 엄마는 시어머니와 딸, 남편을 모두 자신과는 다른 타인으로 몰아세우면서 자신을 점점 고립시킨다. 소설은 엄마와 딸의 회상과 고백을 교차하여 같은 사건의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곳에 진실이 있다.

 

친엄마와 맞바꾼 딸의 생명. 그것이 잔가시로 남겨져 엄마를 괴롭게 한다는 것이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시월드의 세상에서 혼자 마음 졸여가면서 딸을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나쳐 딸과 높은 벽을 쌓은  엄마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의 모습에서 母性(모성)이란 이름으로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선은 과연 어디까지가 허용치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사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자식이기에 엄마와 딸의 교차된 생각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양쪽 모두에게 같지만 다른 묘한 감정의 차이에 공감을 하면서도 서로 진실의  이면에 다가가지 못하고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며 좁혀지지 않는  두 모녀사이에  안타까움이 든다. 나의  엄마는 항상 어렸을 때의 ‘나’를 기억하시고는 여전히 한참 어린 아이처럼 대하시곤 하는데 실제로  엄마가 되면 나역시 엄마처럼 무엇이든지 척척 잘할 줄 알았다. 허나, 엄마처럼 자식에게 희생하고 인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을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크기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커져간다.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현재의 가족에게는 새로운 이해로서의 탈출구가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인이 코와 입매가 닮은 사람들이 된장 한 뚝배기에 반찬 한두 가지, 밥 한공기로도 풍족함을 느끼는 것이 가족이라 했듯이 가족의 사랑은 함께 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소설의 화자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하는 , 소통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비극은 피했을 텐데 하는 안쓰러움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남겨진다.  점점 팍팍해지는 가족의 현주소를 마주한  기분에 씁쓸함이 많이 남지만, 이 책으로 인해 가족관계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나역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의무만을 강요하며 그것을 모성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반성과 고민을 남긴 소설이다.

 

“모성은 인간이라면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이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모성애가 없다고 지탄받으면 그 엄마는 학습 능력이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하는 착각에 빠져서, 자기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틀림없이 모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말로 위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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