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 중국근대사 인간사랑 중국사 1
호승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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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양3국의 학계 내에서 근대의 시점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대영제국과 처음으로 맞붙은 1840년의 제1차 아편전쟁, 일본은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1853년의 흑선黑船 내항, 한국은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맺게 된 1876년의 강화도조약을 근대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나 동아3국을 휩쓴 서구 열강의 충격에 시간적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 대략 역사적 흐름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 첫 머리에서-

 

 

한중일 아시아의 근대사는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시작된다.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거센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열강‘의 침략에 아무런 보호막이 없었다.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이라면 서구 열강의 침략에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폐쇄 된 사회성을 지닌 봉건주의 국가였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근대는 침략의 소용돌이 앞에서 가장 굴곡진 역사를 쓰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미래 역사를 결정짓게 되는 가장 중요한 시대라 할 수 있다. 똑같이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지만, 서로 다른 역사를 쓰게 되는 결정적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 봉건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초입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요동치던 시대의 ’중국‘은 중국공산당 이념의 사상적 토대를 만들고 있던 시대라 명명할 수 있는 시기인 셈이다.  이 책 《중국 근대사》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중국공산당 이념의 원조격인 호승의 저서로 중국 공산당의 사상적 토대가 된 ’인민‘ 또는 ’서발턴‘인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중국 근대사에 일어난 ‘아래로부터의 혁명’- 노동 혁명의 시기를 세 차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차 혁명 고조기 1854~1864년의 태평천국 농민혁명과 두 차례의 아편전쟁

19세기 이전, 중국인들은 서방 자본주의 각국이 세계 각처에서 벌이고 있는 행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모든 나라보다 우월한 ‘天朝(천조)’ 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시기,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의 침략에 차례로 불평등 조약을 맺으며 인민대중들 사이에는 반침략 정서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고 이런 정서는 아편전쟁 이후 대중적 반영투쟁으로 폭발하게 된다. 이 투쟁(태평천국 농민혁명)은 내외의 계급관계가 변화하고 발전하게 되며 빈농과 빈곤한 중농이 주도권을 장악한 혁명이었다. 이때의 혁명은 이상사회와 이상국가의 밑그림을 그려주는 역할을 해준다. 이들은 ‘최저 생활에 필요한 양 이외의 식량과 재산은 모두 ‘국고’ 에 귀속시킨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고 이것은 사실상 실행불가능한 사회의 이념이었지만, 봉건 사회의 낡은 이념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태평천국 농민 혁명은 외국 자본주의 침략자들에게 중국의 광대한 노동인민들이 품고 있던 헤아릴 수 없는 강대한 혁명역량을 보여주었고 중국의 식민지화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혁명적 농민대중은 봉건주의 착취제도와 통치제도를 무너뜨릴 수 없었지만 봉건주의 통치자들도 그들이 지배하던 옛 통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없었지만 봉건주의 통치자들도 그들이 지배하던 옛 통치 질서를 회복할 수 없었다. 농민혁명으로부터 심각한 타격을 받은 봉건주의의 기초 위에 자본주의적 요소는 불가항력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를 보인다.

 

 

 

2차 혁명 고조기 1864~1894 (중일전쟁 후의 몇 년이며, 무술유신운동과 의화단 운동)

서방 자본주의 침략세력과 연합하여 농민대중의 저항을 진압하는 정책이 시작된다. 대외 관계의 모든 일, 서양에서 들어온 사물과 관련된 모든 일을 ‘양무’라 하며 지배계급 사이에서 일어난 ‘양무운동’은 노동 혁명가들의 반감을 더욱 부추기면서 인민들의 반봉건 참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봉건경제가 외국 자본주의 세력 때문에 나날이 파괴되어 가는 상황에서 인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되어 갔고 저항세력들은 대를 이어 투쟁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가한 청왕조의 가혹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점점 확대되어 반침략 투쟁에 참가하자 혁명 운동은 위세를 떨쳤고 이 시기의 투쟁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치운동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 시기의 혁명은 ‘지주계급이 이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드러난 부정적인 영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아울러 외국 침략자들에 적대적인 일체의 사회 역량을 어떻게 동원하고 조직할 것인지, 중화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는 투쟁과 중국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쟁취하려는 투쟁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였다. 중국의 봉건 통치자와 외국 제국주의자, 중국의 광대한 인민 사이에 팽팽한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을 때 등장하게 된 대중의 투쟁을 두려워하고 반대했던 자산계급 개량주의자들과 유민을 주요 구성분자로 하는 ’민족 자산 계급‘의 등장은 혁명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민족자산계급

제국주의보다는 봉건주의와 더 돈독한 관계이며 주요 구성원은 봉건 통치계급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왔기 때문에 정치·경제·사상 면에서 짙은 봉건주의적 흔적을 지니고 있고 봉건경제 봉건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민족자본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관계로서 봉건적 생산관계, 봉건적 통치 질서와는 대립하면서 한편으로는 낡은 생산과계와 낡은 통치 질서의 힘을 빌려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했다.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하면서 원래의 계급적 신분을 그대로 유지했다.

모택동은 ‘민족자산계급은 지주계급처럼 봉건성이 강하지 않고 매판계급처럼 매판성이 강하지도 않다. 민족자산계급 내부에는 외국 자본주의와 본국 토지와 비교적 관계가 많은 일부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민족자산계급의 우익이다.’

 

 

3차 혁명 고조기 (1905년의 동맹회 설립에서 1911~1912년의 신해혁명까지의 시기)

3차 혁명의 특징은 ‘중국 민족이 강한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국민독립의 씨앗을 부린 공적’을 확인하는 과정의 혁명이다. 장기간의 봉건 시대에서 수많은 농민혁명을 경험해 온 자산계급 입헌파는 대다수가 지주계급에서 변신한 인물들로 지주계급의 정치경험을 계승하는 동시에 서방 자산계급에게 배워 온 몇몇 수법과 결합하여 혁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들은 신해혁명 중에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기존의 풋내기 같았던 자산계급이 아닌, 구시대 사회세력과 함께 신해혁명과 5.4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5·4 운동이 남겨주는 혁명의 특징은 기존 자산계급 개인주의의 관점을 견지하던 사람들이 운동이 고조되어감에 따라 투쟁의 대열에서 물러갔고 마르크스주의 사상이념을 추앙하던 사람들이 강인하게 투쟁을 주도해 나간 점이다. 5·4 운동이전에는 ‘신문화운동’이 내건 깃발은 자산계급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였으나, 5·4 운동을 거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소개, 연구, 선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 가게 되어 가면서 신문화운동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만들어진 단체는 사회주의,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으며 2년 후 중국 공산당이 정식으로 창립된다.

 

5·4 운동은 자산계급이 영도라는 구 민주주의 혁명의 종결과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신민주주의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부터 중국 근대사는 새로운 장을 열어가게 된다.

 

사실 이렇게 중국근대사를 다룬 책중에서도 '인민'에 관한, '계급역량의 배치와 관계'순으로 서술된 역사서는 처음 읽는다. 서술방법도 독특하였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사라라는 점이 역사서로는 대단한 시도가 아닐까 한다. 책의 중간중간에 기존의 역사서와 다른 평이 실려 있어, 중국내 사학자들과의 평가가 엇갈리는 점들은 짧은 식견으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부분이었고 (이후 다른 관점의 중국근대사를 읽어보아야 겠다.)  중국 공산당의 창립이 있기까지의 인민의 역사흐름이라는 그림을 그리기에는 무척 탁월한 책이었다. 허나, 중간중간 마르크스와 모택동의 인용문구를 통해서  저자의 역사 시각이 마르크스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과  중국공산당의 사상적이념자라는 점은 책을 읽으면서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서양속담에 커피는 누구나 쏟을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치우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서구 열강의 침략은 그야말로 '쏟아진 커피'와 같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치우느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는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역사이다.  같은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으나 중국은 현재 세계를 제패하느냐 마느냐의 여유로운 승자로서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 승자의 역사를 쓰고 있는 동력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인민'이라는 사실은 자본이 주인이 된 작금의  다른 나라와는 많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역사의 근원적인 힘은 아래로부터 태동한다.  그것은 오랜 역사를 거쳐 수많은 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이미 커피는 쏟아졌다. 그것을 어떻게 치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사《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우리에게 쏟아진 커피를 현명하게 치우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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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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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