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에게 진리란, 늘 변화무쌍하고 개인마다 다른 감각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불변의 진리는 이데아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불변의 진리는 이데아의 세계 속에 존재하며, 그 속에서 철학자는 참된 형상을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철학자의 임무는 사회가 이 이상적 모델과 일치할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리란, 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대상의 형상 자체 속에, 그 형상과 우리 사고와의 관계 속에 있다. 정의와 정치 또는 개인의 행복이 문제시되는 인간사에서는 우연적 변형을 감수하는 시행착오, 절대가 아닌 근사치, 상대적 확실성들을 인정해야 한다.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에게 진리란 육체, 물질,원자의 결합 문제다. 행복의 비밀은 헛된 두려움을 타파한 후 얻게 되는 긴장과 번민의 부재 상태에 있다. 이 진리는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삶으로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특성은 자연이라는 토대 위에 덕의 윤리학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 진리 및 선에 부합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에 절대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성이라는 우리의 본성에 부합하는 삶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진리란, 각자의 마음속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신이란 어찌 보면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 속에 숨어 있는 신성과 조우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몽테뉴에게 진리란, 존재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면서 동시에 즐거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의심과 살아가고자 하는 단순한 용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했고, 또한 최고의 가치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변화무쌍한 풍경들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리의 기분과 성향들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진리 추구란 방법론의 문제, 즉 진리와 거짓의 판별 능력이 있는 우리 이성에 대한 효율적 사용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열심히 훈련하면서 동시에 섣부른 판단은 피하고, 자기가 확실하게 이해한 것에 대해서만 동의한다면 똑같은 결과에 이를 수 있다.
파스칼은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질리가 우리 마음의 평정을 보장해준다는 사고를 배제한다. 인간의 두려움과 고독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진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계시된 진리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파스칼은 자신들만이 유일한 이성이라고 자처하는 다양한 철학적 분파들의 확신을 지속적으로 뒤흔든다.
스피노자가 설명하는 현자의 지복은 근대 초입에 고대의 이상, 즉 이성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완벽한 평정심을 부활시킨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다시금 발견한 진리는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는 데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피노자의 저작은 오랫동안 너무도 많은 오해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효과적 투쟁을 날카롭고 신랄한 풍자를 자처한다. 그래서 개념이 아닌 우스갯소리를 더 좋아하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요컨대 그는 새로운 진리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오류와 허위적 사고에 맞서 싸웠다.
계몽주의 사상의 아들인 루소는 계몽주의의 적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과 이성의 진리가 인류에게 일정하고 유익한 진보를 보장해준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과 역사의 폐해들을 고발하면서, 그것을 바로잡음으로써 자연의 진리와 사회의 진리가 새롭게 일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트가 타당한 진리의 영역을 제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칸트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고정점들과 영원한 기득권들이 존재한다. 그가 역사를 염두에 두었다 하더라도, 칸트의 역사는 진리라는 개념 자체에 있어 근본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진리의 혁명적 힘을 믿었다. 경제의 기능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역사를 바꾸는 것도 가능해진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었다. 니체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확신과 엄청난 거리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것은, 니체가 과학이란 속세의 종교이고, 진리란 지고의 환상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고,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세상의 역사를 둘로 나누어버리고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