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이리나 레인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세계 3대 간통문학으로 꼽히는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간통문학이라 하지만, 여성에게 결혼제도가 주는 남녀간의 동상이몽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문학들이다. <마담 보바리>의 엠마가 수도원에서 엄격하게 교육을 받은 여성이었지만, 교육제도가 심어준 이상적인 결혼관과는 먼 결혼으로 인해 오히려 불행했던 한 여인의 일생의 삶을 그리게 된다. 그녀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물은  보바리즘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가정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했던 여인이었던 그녀에게  생의 잔인함은 엠마를 보바리즘이라는 ‘과대망상’의 대명사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에피 브리스트>의 에피는 이제 막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제도에 갇히게 되면서 자신 스스로 사랑에 자각이 들었을 때, 그녀는  사회에서 이미 불륜녀라는 낙인이 찍힌 채 고립되어 병들어 죽는 불행의 삶을 살다 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으로서의 욕망에 대한 자각이 들기도  전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갇혀버렸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나마 <안나 카레니나> 의 안나는 이들과는 같지만 다른 삶이었다. 안나는 19세기 여성차별에 적극적인 자세와 차별에 관하여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알았다. 그녀의 불행은 여성과 사회의 단절이었으며  세 여성의 공통점은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의 불행이었다. 

 

 

이리나 레인의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의 안나 역시도 결혼제도가 가져온 불행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서른 다섯의 안나가 결혼식이 어떨지 집작할 수 있는 복선들은 ‘웨딩드레스는 힘없이 후줄근하게, 마치 뼈를 발라낸 생선처럼 카펫 위에 늘어져 있었다.’에서 보여지듯이 안나의 결혼생활은 불행의 전조를 보인다. 그런 불안에도 결혼식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혼적령기를 한참 지난데다가 나이 많은 부모들의 깊어가는 주름때문이었다. 안나는 늘 히스클리프처럼 맹목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원했지만 여전히 보바리부인의 엠마처럼 이상의 안경을 쓰고 남자들을 보았다.

 

 

<안나 카레니나>의 번외편처럼 등장인물의 이름도 비슷하다.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 카레닌은 알렉스 K, 안나의 내연남 알렉세이 브론스키는 데이비드 주커먼으로,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참사랑의 모습을 추구하였던 콘스탄틴 레빈은 약사 레프 가브릴로프로, 레빈의 아내 키티는 카티아로 분하여 21세기의 뉴욕을 살아가는 러시아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가 19세기의 격동하는 사회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면 이 책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는 21세기 뉴욕 사회를 살아가는 러시아 이민자들의 사랑과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뉴욕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 , 안나는 자신안에 넘실대는 정체성과 싸워야 했다. 남편 알렉스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민자의 현실, 남편은 안나의 불안과 우울을 모른 척 했고 부유하고 풍족한 결혼 생활 역시도 금이 가기 시작할 때 즈음,  안나에게 여전히 멋진 꿈과 문학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마법사  ‘소설가’ 데이비드가 마법처럼 나타난다. 

 

 

당신은 히스클리프여야만 해.

 

 

안나와 똑같은 이상주의자이지만, 레프는 카티아와 결혼한 현실을 긍정하는 것으로 출발하는 면이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레빈(레프라고도 부른다.)은 신앙이 깊고 신실한 캐릭터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강한 남자로 나오는데 이 책에서도 기본적인 바탕은 그대로이다. 레프는 여성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현실과 타협하는 매우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와의 동거역시도 현실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자 주위의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 연장선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안나 k에게 닥친 불행은 , 과거 엠마나, 에피나, 19세기의 안나나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결혼은 현실이다. 안나 k,의 불행한 결혼생활은 안나k의 문제만이 아닌 현실에서 결혼이 여성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돌이켜보게 된다.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 주는 억압적인 굴레는 여성으로서 한번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이다. <안나 카레니나>가 19세기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삶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었다면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는 21세기의 여성이민자들의 척박한 삶의 이야기이다.  

 

 

선택받은 자에게는 책임이 따랐다. 그 순간이 닥쳤을 때 열린 마음을 가질 것.

옛날 나라는 허물 벗듯 벗어버리고 생각하지 말 것.하지만 그 자리에는 뭐가 들어섰을까?

안나의 경우에는 기다림이었다. 운명의 불꽃이 번쩍이길.

행동하라는 신호가 떨어지길. 꿈에 그리던 완벽한 미국인의 삶이 시작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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