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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두운 시대에서 좋은 예술에 대한 정의는, 시대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고 빛을 내는 인간적이고 마법적인 요소들에 대해 심폐소생술을 가해주는 그런 예술일 겁니다. 어떤 소설이든 하고 싶은 대로 어두운 세계관을 가질 수 있지만, 정말로 좋은 소설이란 이런 세계를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 살아있는 인간 존재를 위한 가능성에 빛을 비춰주는 소설일 겁니다.
-p62
그랬다. 정의는 시대의 어둠속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매일 차로 출퇴근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되었다. 대중교통이라 해봤자 여기는 버스 밖에 없지만, 운전만하다가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한가로움에 이상한 정겨움이 있다. 그 느낌 ‘이상한 정겨움’은 고등학교 콩나물시루처럼 꽉꽉 차있던 만원버스가 연상되면서 오래 된 것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묘하게 섞여 전해지는 복합적인 느낌들이다. 마치 세상이 온통 칼라로 빛나고 있을 때 버스 안에서 오로지 나 혼자 색을 입지 않은 채 존재하는 그런 ‘이상한 정겨움’이 나이 탓인지, 요즘 점점 좋아져 하루 종일 버스 타는 시간을 고대하고는 한다.
제목도 이쁜 이 책 《모든 것은 빛난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문화적 쇼크에서 오는 혼돈속에서 '실존'을 찾는 여정이다. 모든 것이 빛나는 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빛나는 것들, 실존의 세계를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일반인을 동굴에 갇힌 포로로 비유하고 있는데 동굴에 갇힌 상태에서 일반인들은 벽에 드리운 그림자나 흐릿한 사물만이 볼 수 있다. 이에 플라톤은 실존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 밖에 존재하는 궁극의 실재를 추구하기 위해 철학함으로써 실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살한 미국의 천재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David F. Wallace) 의 작품들에서는 실존의 상황이라는 극한에 다다르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통과 슬픔을 관통하는 삶에 천착한다. 반대로 호메로스 시대의 인물들은 실존의 상황에 다다르기 위한 정신적 노력이 없이도 실존과 함께 했던 인물들의 등장을 볼 수 있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철학이라는 줄기속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 '실존적 존재'인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철학과 인문학의 절묘한 조합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즈음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생명의 존재가 무척 하찮아진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대중문화인 영화에서조차 생명을 초개처럼 버리는 것을 ,너무도 흔하게 볼 때마다 씁쓸해지곤 한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경시풍조 역시도 철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떻게 고착되어 가는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실존'이라는 텍스트로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종횡무진하며 '삶'에 천착한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상실의 뼈저린 감각, 방황하는 존재의 어둠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의 지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현대 고착되어진 생명 경시풍조나 우울, 자살, 방황과 같은 어두운 존재의 시작은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과 선택의 짐을 ‘개인’이 떠안게 되면서부터 라고 한다. 저자들의 거대한 철학의 줄기들은 현대인들의 뿌리깊은 진화론적 세계관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가치들에 대해서 아주 오래된 서양철학의 고전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시작하여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단테의 『신곡』, 멜빌의 『모비 딕』에서 삶에 대한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독특한 문화여행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여행의 종착지는 바로 '반짝반짝 빛나는 주위의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실존'이자 현재의 순간들이다.
1장 선택의 짐 ― 선택의 짐을 회피하는 두 가지 방식
2장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 ― 실존의 과도한 짐은 허무주의를 부른다
3장 신들로 가득한 세상 ― 호메로스의 행복했던 세상
4장 유일신의 등장 ― 기독교가 바꿔놓은 삶의 가치
5장 자율성의 매력과 위험 ― 악마의 특징이 인간의 미덕으로 변하다
6장 광신주의와 다신주의 사이 ― 개인 대 신의 싸움
7장 우리 시대의 가치 있는 삶 ― 성스러움을 회복하는 길
단테는 『신곡』에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실존의 상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자율성)을 악마의 특성으로 돌린다. 마르틴 루터를 거쳐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르러 인간의 자율성은 인간의 가장 존엄한 특징으로 복권된다. 칸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 세운 도덕 법칙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평가될 수 있는 자율적 주체”가 된다.
멜빌의 <모비딕>에 이르러 다신적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장 에이브람의 고래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바라보는 이스마엘의 사고를 다신적 사고라고 한다. 유일신 문화에 물들지 않은 다신적 사고, 이러한 사고는 동굴에 있던 포로가 실존의 태양을 바라본 사고와 동급이다. 현대 테크널리지의 세계는 실존과 더욱 동떨어진 세계를 선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계의 의미를 상실할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도 단조로와지며 사물에 대한 애착과 존경-위에 말한 사물이 가진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철로에서 떨어지는 취객을 구하는 순간, 야구장 관중석에서 하나가 되어 환호하고 기뻐하는 순간, 커피 한 잔의 기쁨과 같은 순간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서 내가 버스타는 시간을 고대하는 순간들이- 항상 우리 곁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의 삶은 허무주의를 극복하며 더욱 가치 있어진다고 한다. 동굴의 갇힌 포로가 아닌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와 같이 '실존'에 이르는 삶의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삶의 결을 느끼는 순간임을 기억하기를 ....
단테에 따르면, 모든 영혼은 세상의 사물들에 자연적으로 끌리는 성향을 가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끌림을 가치 있는 삶 쪽으로 돌릴 수 있을까? -p229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