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와 함께한 인생여행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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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의 육체로 상징되는 거품, 바로 삶 자체를 사랑하게 될 때 시간은 결코 우리를 절멸시키지 못하리니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 불임이니 시간에 의해 절멸될 것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게 되고, 그 사랑을 이어감으로써 우리는 시간에 대항할 수 있게 된다. 육체가 죽어도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 그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 불멸이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남는 존재들이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에서 -

 

 

판도라 상자에서 튀어나온 세상의 모든 재앙중의 가장 먼저는 ‘시간’이다. 생각할수록 의아함이 드는 부분이다. 인간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만든 판도라 상자에서 시간이 먼저라는 사실은 어쩌면 그만큼 시간이란 가장 잊기 쉬우면서도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닐까. 사실 나 역시도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그다지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요즘처럼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을 보면 우리는 점점 더 시간에 예속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 《도르와 함께 한 인생여행》에서 도르는 타임키퍼이다. 시간여행자라는 테마는 문학에서 매우 친숙한 소재이다. 그러나, 기존의 시간여행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 도르는 신의 영역인 ‘시간’을 인간의 삶에 가져온 형벌의 ‘타임키퍼’라는 점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추방된 이브처럼 인류 최초로 시간을 측정하였다는 죄로 인류 최초로 ‘시간의 아버지’가 된 도르. 소설에서는 신의 영역 즉 , 인간이 닿지 못하는 것을 욕망한 두 가지 산물이 있다. 첫째는 바벨탑이고 두 번째는 시간이다. 바벨탑은 도르의 어렸을 적 친구 ‘님’이 신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탑을 쌓는다. 고대에 시간은 '신의 영역‘이었으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인류 최초로 시간을 측정할 줄 알았고 분석을 할 줄 알았던 도르는 사랑하는 아내 앨리가 병에 걸려 죽음이 눈앞에 찾아오자, 시간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가장 높은 탑인 바벨탑에 오른다. 바벨탑에 오른 순간에  인간들은 파멸하고 도르는 시간의 동굴에 봉인 될 줄은 모른채... 

 

 

 

 

“신이 사람의 수명을 정해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도록.”

 

최초로 시간을 센 형벌로 동굴에서 6천년을 보내며 도르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살았다. 나이도 먹지 않고 만나는 이도 없이 영혼이 메말라가는 가운데 기억하는 단 하나의 얼굴은 오로지 사랑하는 앨리였다. 동굴 벽에 새긴 앨리의 얼굴을 기억하며 천장과 바닥이 눈물로 이어지게 되었을 때 ‘세상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으로 도르는 현대로 떨어지게 된다. 그곳에서 부와 권력을 가졌지만 병에 걸려 죽을 운명에 처한 갑부 빅토르와 부모의 이혼이후 불행한 시간들을 보내며 남자 친구에게 버림 받은 뒤 자살을 시도한 세라를 만나게 된다.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 시간에 의해서 절멸 될 것이다.‘ 시간의 신이 남긴 말이다. 도르가 앨리의 죽음을 멈추고 싶어 하는 것처럼 빅토르 역시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영원불멸의 삶에 천착한다. 고등학교 3학년인 세라의 희망 없는 삶에서도 현재의 시간은 덧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이들에게 시간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현재라는 시간의 모습에서 도르가 떠난 뒤 남겨진 앨리의 고통의 모습이나 빅토르가 불멸을 위해 냉동을 선택한 후 남겨진 그레이스의 슬픔, 세라가 떠난 후의 엄마의 아픔들은 이들에게 현재 삶이라는 시간이 주는 의미를 깨닫기에는 충분하다. 시간이 ’잃어버린 것을 갈망하게 되며 현재 가진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판도라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류의 첫 재앙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게 주어진 현재라는 삶의 시간들에 충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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