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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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연상케 한다. 현대에 넘쳐나고 있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우울과 공허의 은유가 넘쳐나는 책이다.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파리를 매춘부라 묘사하였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사회라 표현한 것과 같은 표현이다. 성적으로 몸을 판다는 의미가 아닌, 스스로의 노동력이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의 은유인 셈이다. 책에 실려 있는 총 7편의 단편이 주는 은유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속성인 ‘보편적인 매춘’을 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암울한 자화상이다.

 

 

<로스트 인 서울>은 그렉 안나라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여대생의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추락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한국에서 성공의 바탕은 첫째도 외모, 둘째도 외모이다. 그렉안나의 외모는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그러면서도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국 남성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것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린다. 외국인이었던 그녀는 케이블 방송업체를 운영하는 강이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강과의 동거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급아파트, 수입자동차, 높은 출연료가 당연한 듯 보장되었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삶은 강의 집착과 폭행으로 얼룩지게 되고 그 모든 것을 그렉 안나의 집 인테리어를 하게 되면서 ‘비밀의 방’을 만들어 준 ‘나’가 엿보게 된다. 그렉 안나를 엿 보게 되면서 사랑이라 생각했던 ‘나’는 ‘사랑은 그것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확언한다. ‘나’의 사랑은 강과 그렉안나의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모른 채 ‘나’는 점점 ‘안나’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그렉안나가 한국인 사회를 폄하하는 발언을 방송 중에 하게 되면서부터 안나의 인기는 순식간에 추락한다. 결국 강에게서 이별 통보의 문자를 받은 그렉 안나를 두고 ‘나’는 그렉 안나와의 사랑을 ‘내 사랑이 과장되었던 것은 아닌지’하는 비겁함으로 무장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주인공은 아내와 여행을 간 곳에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른 삶의 기억을 기억한다. 형의 죽음에 대한 기억, 환상인지 상상인지 모를 기억이 뒤엉켜 혼미함을 남긴다. 도망다니던 형과 형의 친구 홍아저씨, 이어 남겨진 홍아저씨의 여자와의 만남까지도, 단지.

 

 

이 거리에 가득한 아무것도 없는 공기를 봐. 무언가 숨기고 무언가를 드러내고 있어. 우리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것을 숨기고 있을 거야. 기억 속의 내가 유령인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유령인지 당신은 혹시 알아?

 

 

<탈옥> 감옥에서 주인공이 탈옥을 하기 위해 편도선을 떼내고 위궤양으로 위를 반쯤 떼어내고 맹장을 떼어냈음에도 탈옥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도망이다. 나의 내장은 나를 위해서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다.’ 빈 내장 안에는 주식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욕망으로 가득 채운다. 다시 한번의 내장을 비워내고 타게 된 앰뷸런스 안에서 그는 과연 탈옥에 성공하였을까? <그 남자의 손목시계>의 주인공도 모호함이 가득하다. 아버지를 ‘그자’라고 할 정도로 가족 연대감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해체 된 가족의 모습. 늘 반듯하고 예의바른, 시계를 보는 모습의 ‘그자’의 어머니를 향한 학대와 폭행을 보며 ‘그자’가 애지중지하는 시계를 때려 부수는 것이 ‘복수’라고 생각하며 성장한 한 남자가 성장하고 나서는 시계를 죽이는 것이 아닌 ‘그자’를 죽이는 실제적인 목표를 가지게 되는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도시에서 느끼는 원천적인 두려움이 바로 가정의 해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누군가는 죽을 것이고 죽은 누군가는 이처럼 가벼운 영혼이 되어 퐁퐁 날아다닐 것이다.’

 

 

<후쿠오카 스토리>는 8년을 사랑했던 남녀, 두 쌍의 연인이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요크 여행을 떠나 좌초될 위기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커플들을 통해 피상적인 사랑이 주는 파국을 보여주고 있다. <로라, 네 이름은 미조> 영국에 시집간 미조가 로라로 살기 위한 이야기. 그녀의 삶은 “서울에서 스코틀랜드로, 세계를 돌아 다시 영국으로, 파리에서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다시 서울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녀의 위장에는 영국 왕실의 전용 찾잔인 유리조각과 영국 버버리 금장 단추만 남아있었다.

 

 

7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지 않다. 이들의 욕망과 불안의 원천적인 것은 바로 ‘도시’라는 거대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도시에서의 사랑은 자신의 욕망 앞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며, 가족과의 관계 또한 ‘친부 살해’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 도덕적인 양심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보다도 ‘가문'이나, ’왕실의 찾잔‘이 더욱 소중한 영국 문화에 물들기 위해 깨진 왕실 찾잔 유리조각을 삼키는 한국인’미조‘의 행위도 자본주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스스로 병들어가고 있는 현대 문명속의 현대인들의 모습과 진배없다. 이 소설이 특이한 것은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리지만, 현대인들의 아픔이나 상처를 전혀 치유하려 들지 않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과정을 따라감에도 작가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비정함의 속살을 과감히 벗기고 있을 뿐 상처를 감싸거나 섣불리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에서 “나는 삶이다. 견디기 힘든 , 냉혹한 삶!” 이라고 외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잔혹성을 마주하란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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