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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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아이티를 벗으려고 하는 아이의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에서 소녀가 되려 하는 아이의 맨몸을 보며 근심이 가득하다. 앞으로 생리주기를 알려주어야 하고, 브래지어의 착용법도 알려주어야 한다는 자각이 든 것은 최근 들어서이다. 아이가 성숙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지만, 성교육을 시키려고 하니 우선 겁부터 덜컥 난다. 우선 내가 성교육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을뿐더러 아이에게 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려준다는 것이 영 어색한 이유도 있다. 간혹 아이들과 영화를 보다가 멜랑꼴리한 장면이 나오면 아이들은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는 반면에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속으로는 뭐라고 말은 해야하는데 .. 하면서.

 

 

 

한 번 하자.”

싫어.”

 

동정 없는 세상의 첫 시작. 아니 이렇게 적나라하고 재기발랄하면서도 야한 말 들어본 적 있나? 물론 이 나이되면 다 이해할 수 있지만, 이 피어오르는 야릇한 상상을 어쩔 거냐구..  ^^;; 그러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읽는다. 사실 이 책을 구매한 것은 동정同情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동정同情이 동정童貞일 줄은 정말 몰랐다. 오래 전 <아내가 결혼했다>를  재기발랄함과 황당한 설정에 놀라움으로 기억되었던 작가와의 두번째 만남이다.  두 남편을 거느린 아내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설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페미니즘에 가까운 여성문학으로 인식되자, 문학이 찰나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가치의 전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박현욱 작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장의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두고두고 떠올려지는 글로 기억되는 작가. 그래서 망설임 없이 구입하였는데 이 책을 구입할 당시 정말 순수하게 동정同情 없는 세상으로 이해했던지라, 첫 시작에 빵 터진 것은 무리도 아니다.

 

소설은 이제 막 소년의 허물을 벗으려고 하는 준호의 이야기이다. 엄마들이 젤 무서워하는 고3 수험생. 그런데 준호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여친 서영과 한 번 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전부이다. 아빠의 존재는 알 수 없었고, (숙경씨의 침묵으로) 미용실을 하는 엄마를 숙경씨라고 부르고 삼촌을 명호씨라고 부르며 맞담배까지 태우는 이 고딩의 이름은 학생이라기 보다는 자유인에 가깝다. 준호의 자유분방함은 적어도 웃기든지 혹은 재미있든지 최소한 화끈하든지 해야 하지만, 그 세 가지가 모두 결여된 삶’,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준호가 책 제목과 같은 <동정 없는 세상>을 보며 느끼게 된 영화평이지만, 그 영화평을 대신하여 자신의 삶을 반추한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준호의 삶도 웃기도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써프라이즈도 없이 단조로운 삶이다.  유일하게 여친 서영의 존재만이 회색빛 준호의 인생에 유일한 핑크빛이다. 오로지 서영과 한 번 하고 싶다는 욕망과의 투쟁으로 점철시킨 준호의 인생사는 서울대를 나온 백수 삼촌 명호씨에게 마스터베이션을 잘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친구들과 매일 포르노를 보면서 비디오 모니터를 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섹스의 외연으로 삼는다. 그런 준호의 모습은 나름 귀엽다?. 왜 무언가 손에 닿지 않을 때 발버둥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준호의 섹스는 어린아이와 같은 칭얼거림이다. 아마도 준호의 모습은 김두식 교수가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말한 지랄총량의 법칙으로 알려진 지랄을 떠는 모습이자,‘에너지이기도 하며, ‘청춘이기도 하고, 프로이드가 말하는 이드(id)“이기도 한 욕망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런 준호가 변해간다.

 

요렇게↓

나는 이제 철없는 십대가 아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없는 것처럼 하기 싫다고 모두 마다할 수는 없다. 스물이 되고 싶지 않다고 스물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듯 언젠가는 서른이 되고 또 금방 마흔이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준호의 모습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딱히 고민도 깊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性으로 인생을 철학하는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준호를 통해서 이렇게 성이라는 것이 유쾌하였던 단어였던가를 떠올려본다. 성性을 환상으로 흠모할 때 준호는 자신의 정체성조차 모호하게  인생을  바라보다가 성을 현실로 맞딱드릴때야 비로소 자아를 찾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자각에 따라 정체성을 확립해가면서 준호는 소년의 허물을 한꺼풀씩 벗는다. 준호에게  성性은 성인으로서의 자각이자 존재의 이유로서 정체감을 확립해주는 아포리즘이다. 동정 없는 세상》은 기존에 터부시 되어 왔던 성에 대한 인식을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경쾌하게 청소년의 성문화를 인지시키고 있다. 성을 통해 사회적 관계로서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준호의 모습을 통해 건전한 성에 대한 인식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떠올려보게 되기도 하였다. 성性,  나도 아이에게 당장이라도 성교육을 해야겠다. 한 번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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