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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평점 :
철학이란 무엇일까? 철학이란,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물을 인지하고 사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철학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기 위해 탁자에 앉는 순간까지 지나친 사물은 여러가지가 된다. 이 여러가지의 사물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있었는가 싶었는데 역시나 없다.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 신용카드, 세탁기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기는 커녕 그저 하찮은 사물이라 여겨왔던 것 같다. 마이클 샌델은 철학을 모든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모든 사물을 그냥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반드시 비판과 고찰을 하여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철학이 가진 궁극의 목표이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사물의 발견과 고찰을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터득하곤 하였다. 일상의 철학가 몽테뉴는 사물의 존재를 통해 삶을 깊이 성찰하였으며 이런 성찰은 인간의 이해로 확장시켰다. 《철학자의 사물들》은 사물의 존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나아가 사회와 경제와 정치까지 시야를 확장하여 철학을 우리 삶에 체화시키고 있다.
오늘날 책은 바로 우리의 노인이다. 우리는 미처 고려하지 않지만, 문맹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더 풍요로운 이유는, 그 사람은 단지 자신의 삶만 살아가고 또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우리는 아주 많은 삻들을 살았다는 데 있다.(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법)
사람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과 더불어 산다. 사물을 만듦으로써 사람은 동물과 분별되면서 제 존엄성과 권위를 더 드높이는 존재로 거듭난다. 철학자의 사물들의 첫 장의 시작인 이 문장은 도구의 인간(호모 파베르 homo faber )을 가잘 잘 표현한 말이다. 이 책의 철학의 단초는 말그대로 사물이다. 우리는 그 사물을 통해 철학자 장석주의 시선으로 사물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다.
관계 : 신용카드, 휴대전화, 자동판매기, 세탁기, 진공청소기.
취향 : 담배, 선글라스, 비누, 욕조, 면도기
일상 : 가죽소파, 탁자, 침대, 변기, 카메라, 텔레비전
기쁨 : 책, 화로, 사과, 병따개, 냉장고, 조간신문
이동 : 시계, 구두, 여행가방, 우산, 활, 망치, 추
다섯 개의 분류지에 따라 배치된 사물들은 철학자들의 사유의 인식의 촉발제로서 더욱 풍성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용카드는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으로 낯설게 바라보기를 시도하며 현대의 신용카드로 우리는 이미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에 장악된 ‘부품’이며 노예라는 ‘호모 데비토르’의 탄생배경을 사유케 한다. 사물의 존재란 이렇게 익숙한 명칭과달리 그 이면에는 사회적 관계의 형성망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휴대 전화는 미셀 세르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짝을 이루어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 우리는 ‘이 기술의 핵심은 곧 시간의 압축이다. 인류가 이 시간의 압축제를 써서 창조적 진화물에서 진화의 창조자로 나서고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진화되는 것을 멈춘 것이다.
자동판매기는 데카르트와 짝을 이루어 자동판매기와 같은 인간을 비유하며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현대 문명의 비판의 날을 세운다. 스피노자와 진공청소기의 짝은 포퓰리즘의 비판을 낳고 니체와 선글라스는 권력자의 가면을 표방한다. 잘 보드리야르와 비누, 면도기와 막 오제는 사물세계의 고갈과 소멸에 대한 사유로, 망치와 제러미 러프킨은 기술적 진보가 인간을 노동에서 소외시키는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노동으로 피곤한 몸을 누이기엔 그만인 소파는 사르트르의 <구토>의 주인공이 '사물들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처럼 인간의 몸뚱이를 삼키는 권태와 환멸의 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남편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물은 소파이다. 집에서 누워있다가도 남편이 오면 자동반사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데 요즘에는 소파에서 잠드는 횟수가 많아져 걱정을 했더니 ‘ 내가 죽으면 소파와 같이 묻어줘’ 하며 소파와 자기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한다. 특정 사물에 대한 애착은 삶과 함께 한다. 역겁의 세월을 살아오며 사물은 인간과 함께 흘러왔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사물의 흐름'을 인지하라는 말을 남겼다. 스피노자는 기존의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관계를 맺는 그 순간 존재했던 것은 새로운 흐름 형식을 띄게 된다고 하였다. 신용카드의 흐름, 비누의 흐름, 탁자의 흐름, 침대의 흐름, 냉장고의 흐름, 구두의 흐름, 우산의 흐름, 활의 흐름 등 사물들의 흐름이 시작되고 새로운 사고가 스며들어 삶의 내부를 바꾸어주는 실천과 장소가 되는 기제가 바로 철학이다. 우리는 사물들과 더불어 살며 사물들의 세계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저자 장석주는 사물을 모른다면 사물들 속에서 살과 피와 뼈를 얻는 삶도 안다고 할 수 없으며 사물의 감식가는 사물의 장엄함을 통해 삶을 맛보고 그 삶의 珍景진경을 들여다보는 자일 것이라 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몽테뉴가 사물의 흐름에 발견하고 고찰하며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 삶을 사랑하며 인생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시인이자 비평가인 장석주의 《철학자의 사물들》은 사물들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함과 동시에 일상의 사물을 삶이라는 철학으로 체화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