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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소녀 ㅣ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세상을 벗어나 홀로 서 있네.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한번 돌아보니 성이 기울고 다시 돌아보니 나라가 기우는구나.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어찌 성을 흔들고 나라를 무너뜨림을 알지 못하는가.
아름다운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
역사에서 아름다운 여인은 ‘경국지색’이라 하여 경계의 대상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패자들이 여인으로 인해 패망의 길을 걸었던 역사의 주인공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을 보면 여자의 아름다움은 분명 치명적인 독이다. 《너무 예쁜 소녀》의 주인공 마농의 아름다움은 ‘숨이 막힐 정도’ 라든지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쁘다라든지, 보는 이들이 한 번 보고 나면 감탄을 하게 된다고 하는 표현들이 있다.
마농의 미모는 그녀의 삶에 벗어던질 수 없는 큰 짐이 되리라.
마농의 등장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거의 짐승에 가까운 모습의 그녀를 사람들은 ‘마농’이라 불렀다. 과부 포샤드 부인의 축사에서 오물을 뒤집어쓴 마농을 본 순간 포샤드 부인은 마치 숙명처럼 그녀를 거둔다. 아이가 없던 결혼생활은 행복하였지만 남편과의 사별이후 지나치게 조용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포샤드는 마몽을 본 순간, 무료한 일상에 선물인양 마농에게 열중하게 된다. 빼어난 미모로 마을청년들에게 소문이 나고, 그 중 돈 많은 청년 장 루크 지로는 마농에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한다. 그러나, 마농에게서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있는 사랑이나 욕망, 꿈, 감동과 같은 일말의 감정들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포샤드 부인이 잠든 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포샤드 부인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홀로 길을 떠나는 마농은 목적지도 없이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갈지도 ,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길을 걷던 그녀를 보고 반한 남자들이 무작정 그녀를 태우고 그녀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게 된다.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뭇잎으로 덮어놓은 젊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온몸은 피로 물들어있고 여러 군데 찔린 채 목은 거의 잘라지다시피 한 남자의 신원은 며칠 전 마농을 태운 남자들 중의 하나였다. 아무 단서도 없는 가운데 남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주유영수증은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강력계 반장 마탈러 형사는 주유소에서 피해자와 동승한 사람이 세 남자와 젊고 예쁜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유소 목격자는 그 외에도 차 넘버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살해된 남자의 신원은 베른트 풍케라는 젊은 의대생으로 결혼식 전 두 명의 친구와 총각파티를 떠난 후였던 것이다. 나머지 친구들의 행방을 수색하던 중 시체 발견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호수에서 베르튼 풍케의 차가 발견되고 차 트렁크 안에는 베른트와 같이 여행을 떠났던 친구 요헨의 시체가 베른트의 시체처럼 잔인하게 살해된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같이 여행을 떠난 마지막 생존자 헨드릭 플뢰거가 수사망에 포착되는데....
사건을 수사하는 마탈러 형사는 아내의 죽음 이후 외롭지만 나름의 자기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휴가를 앞두고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할 생각에 일사을 지루하게 보내던 중 갑자기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은 무미건조한 형사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밝혀지지 않는 신원미상의 젊고 예쁜 여자의 존재는 수사에 혼선만을 가중시키며 사건을 미속에 빠뜨리는 데 , 용의자는 베른트에게 차를 판 외르크 게스너였다가 마지막 생존자 헨드릭 플뢰거가 되었지만, 헨드릭 플뢰거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중 고층에서 투신 자살하여 용의선상에 제외된다. 그러던 중 인근 호텔에서 여행전문기자인 로만의 시체가 베른트와 힐거와 같은 패턴으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자, 호텔에 같이 투숙했던 로만부인 -마농-에게 집중된다.
전형적인 심리스릴러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 등골이 오싹한 공포가 느껴지며 피부에 잔소름이 돋아난다. 경국지색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 소녀는 자브뤼겐에서 발견된 일가족 교통사고의 현장에서 사라진 소녀였다. 모두 죽고 소녀만 실종처리 되면서 경찰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던 이 사건은 마농- 실종된 소녀 마리 루이제 가이슬러라는 것이 밝혀지자, 마탈러형사는 일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비극이 '너무 예쁜 소녀' 마농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악녀의 전형일 것만 같은 마리 루이제 가이슬러의 모습은 악녀라고 할 수 없는 ‘소녀’ 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더 소름돋는다. 악이 악의 모습이 아닐 때 느껴지는 곤혹스러움은 사건에 연루된 형사나 주변 인물들에게서도 그대로 보여진다. 그녀는 악녀라 하기엔 너무 순수하고 여린 모습을 하고 있기에 책을 다 읽고나서도 그녀가 정말 살인마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차라리 그녀가 전형적인 악녀의 현신이었다면 그런 혼선을 없을테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비롯된 것인지 성폭행의 피해자인 것인지 아니면 타고나길 악녀인지도 모르겠다. 범인을 예측하면서도 극의 서사를 알듯 모를 듯 진행하는 감칠맛이 빼어난 심리스릴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