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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 - 독일인이 바라본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구당 보고서
하네스 B. 모슬러 지음 / 인간사랑 / 2013년 4월
평점 :
요즘 들어 정치권에서는 새롭게 주목되는 사안들이 많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안들은 아무래도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와 ‘돈 먹는 하마’로 불리던 지구당의 부활이다. 여전한 갑론을박 중에 《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이 책은 무척이나 시기적절한 책이었다. 저자 하네스 B.모슬러는 독일에서 태어나 사회문화학과 한국학학사를 공부한 후, 서울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자가 독일인이라 번역된 원서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약력을 보니 책을 번역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은 2004년 3월 여야 합의로 감행된 지구당폐지가 민주주의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초래한 결과들을 분석한 논문이다.
저자는 포스트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1, 형식적 수준에서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존재하고, 그것이 정치의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정책결정 과정에 미치는 영향이 미약한 점.
2, 정당정치와 득표를 위한 정당 간의 경쟁은 선거공약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의무에서 자유롭고, 구체적인 정책과 그것의 실천 여부에 대한 토론 대신에 인물 중심적 선거운동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점.
3,정치적, 경제적 행위자들의 보다 밀접해진 상호작용으로 정치의 경제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점.
4,헌법에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명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의 권력은 미약하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선진국에 나타나는 포스트 민주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들이 후발민주주의 국가인 한국 정치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와 정당의 관계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지구당 제도가 매우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역할이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의, 참여, 민주주의의 주요 원칙을 실천에 옮기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의 기초조직인 지구당은 정당의 삼각구도의 일각으로써 여론수렴, 민원상담, 의상형성, 목적설정, 정책개발, 공직후보자 공천, 지도층 선발, 충원, 투표유도, 선거운동, 이익 집약, 대표, 집단통합, 민주시민교육 및 정치적 사회화, 정책선전, 지지호소, 국민동원, 정책정당화 등 정당의 다양한 핵심적인 역할들을 현장에서 담당한다.
이렇게 지구당은 유권자로서의 일반국민과 대의적 지배구조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일차적 장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당은 정당의 핵심적 교차지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2004년 지구당제도가 폐지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정당민주주의로 설계되어 있다. 즉 민주주의의 원리를 실천하는 데 정당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둘째, 정당법 개정과 이 개정에 대한 위헌소송을 기각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심각하게 도전을 받았다.
셋째, 정당법이 개정되고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그리고 헌재가 판결을 공개한 몇 개월 후 - 국회에서 2005년에 정당법을 다시 개정해서 지구당의 완전한 폐지를 부분적으로 취소했다.
넷째, 정치개형위원회의 소위원회에서 지구당 폐지를 직접적으로 촉진시킨 핵심 행위자들도 사후에는 지구당의 완전한 폐지는 본인의 원애 의도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다섯째, 만장일치로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10여 년 동안 형성되어 온 지구당 이슈에 대한 논의과정의 복합성과 애매함에 비춰 보았을 때 매우 간결하고 확실해 보인다.
여섯째, 지구당 폐지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결과와 언론보도는 당내 부정부패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여준다.
2005년에 새로운 정당법 개정에 의해 지구당이 당원협의회 형태로 부분적으로 복구되었다. 개정된 법 또한 지구당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당의 자유’에 대한 관한 조항(제37조)에서 당원협의회를 둘 수 있다는 내용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지구당의 폐지는 국민의 참여를 통한 개혁이나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방향의 정치개혁을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으로 만들었다.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의 공저자들은 한국 정치의 성숙을 위해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민주적 문화의 혁명을 이루어야 하며 신좌파와 구좌파의 분열을 어떻게 극복하고 보수-진보 양 세력 간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돈먹는 하마, 부패와 비리의 원인으로 폐지된 지구당이 사라진 뒤의 선거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대격돌로 이어졌고 세대간의 불통으로 인한 대립의 양상을 보였다. 여러 가지 정치구조의 복합적인 결과이긴 하지만, 민주주의 성숙과정에서 지구당 제도가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역할이 과소평가 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정치체제와 사회를 매개하는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적 계급’은 대중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게 되자 시민사회와 연대와 소통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당폐지는 한국 정치가 떠안은 또 다른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의 중심에는 정치 계급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에 관한 이해의 문제라고 하며 이로 인해 정치와 사회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임을 지적하고 있다. 폐지된 지 5년만에 정치권에서는 다시 지구당 부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구당 폐지의 결과인지 모르나 정치와 시민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당의 부활을 앞두고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지구당’에 관한 심층 분석의 《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은 작금의 정치현실에 무척이나 시의적절한 책이 아닌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