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 작가의 책을 내가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처음이다 배수아 작가의 책이 이렇게 독특할 줄은 몰랐다. 배수아 작가의 책을 처음 읽지만 이렇게 독특한 책은 또한 처음 읽는다. 좀 얼떨떨하다가 매력적이다 못해 다시 매혹스럽다. 이런 느낌은  작년 노벨상 수상자였던 모옌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몽환과 환상이라는 환상적 리얼리즘 문학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배수아 작품은 모옌과 같은 환상적 리얼리즘처럼 이야기에 꼬리를 무는 하이브리드 같은 장르문학은 아니다.  오히려 초현실주의 문학에 가깝다.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안내하는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토끼처럼 알려지지 않는 비밀의 도시에 초대하는 배수아만의 초대이다. 그저 그 비밀의 도시를 배회하는 방랑자로 참여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의식할 수 있는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의 경계가 전혀 없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전혀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몽환적이고 대체적으로 모호하다. 이런 패턴들은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조각처럼 난해함과 모호함의 조각들로 가득하다. 비밀스러운 도시의 주인공들조차도  이런 난해함의 조각덩어리이다.  전직 여배우로  오디오극장에서 일하는 아야미와  오디오 극장의 극장장과 시인 여자이며 아야미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주기도 하며 오디오극장에서  <눈먼 부엉이>를 낭독해주는 낭독자인 여자 여느는  정체불명의 여인이다. 여느는 안와가 동굴처럼 푹 꺼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부하에게 텔레폰서비스를 해 주는 여자이기도 하고 가끔 소설가의 비서를 한 적도 있고 부하에게 약을 받기도 하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이다. 여느 만큼이나 존재의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추리소설가 볼피피까지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다른 듯 하지만 같은 인물이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감각만이 필요하다. 오디오 극장이 눈으로 볼 수 없고 오감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곳인 것처럼 이 소설은 눈으로 보아서는, 보여지는 것만으로 읽는다면, 주인공들이 그리고 있는 '비밀의 도시'를 볼 수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감각으로만 존재하는 세상, 비밀의 도시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이다 소설가 김사과가 배수아 글쓰기 경향에 대해서 그녀가 향하는 곳은 우리가 한 번도 닿아 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표현을 한 것을 보며 배수아가 소설에서 창조해 낸 세계는 우리가 한 번도 닿아본 적이 없는 이데아의 세계를 뜻함을 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영원하고 완벽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 예컨대 절대적인 정의나 선, 아름다움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이데아에만 존재하는 한다고 하였던 것처럼, 여느가 부하에게 말한 '동굴'은 배수아 작가가 창조해낸  '이데아'의 세계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존재가 모호한 형태의 '여느'와 '부하'와의 사랑은 현실이나  물질적인  보여지는 실체에서의 사랑이 아닌 이데아적인 사랑이다. ‘세개의 동굴은 나에게 속한 육신의 세 개의 구멍에 해당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곧 당신에게 속한 장소예요. 열락의 거울상이 없다면 우리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세 개의 동굴은 세 개의 거울이에요. 사랑은 알려지지 않은 행위지요. 지상 어딘가에 있는, 깊고, 어둡고 ....(중략)’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해 들어가는 상처가 있다.....”

 

안와가 동굴처럼 움푹 패인 얼굴을 가진 부하. 부하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야미, 부하가 사랑하는 시인 여자 여느는 부하의 꿈과 맞닿아 있다. 꿈은 바로 시인 여자였고 시인은 바로 부하의 꿈이었다. ‘원래 부하가 시인 여자를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순간은 누군가로부터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 때라고 하듯이 꿈과 같은 선상에 시인 여자가 있다. 여느는 아야미가 되었다가 아야미는 여느가 되었다. 꿈에서 여느는 아야미인 동시에 시인 여자였다.  

 

그 두명의 여자들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의 그림자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들이 동시에 책을 읽을 때 그것은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를 잃어버리게 되어요. 모든 것은 너무 빠르게 세워지고, 너무 빠르게 사라져버린답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집을 나와 열 발자국을 걸은 다음 뒤를 돌아보면, 거기 항상 서 있던 집이 보이지 않는 일도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 영영 알지 못하는 거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이 도시의 숨겨진 이름은 비밀이랍니다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안내하는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토끼처럼 알려지지 않는 비밀의 도시에 초대하는 배수아만의 초대이다. 그저 그 비밀의 도시를 배회하는 방랑자로 참여하는 것만이 독자로서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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