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경 -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자오촨둥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현대는 말 잘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시대이다. 언변의 뛰어남이 성공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만큼 말 잘하는 것도 하나의 경쟁력이다. 만약 오바마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말에는 역사를 바꿀 힘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말은 잘 쓰면 득이지만, 반대로 독이 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우수한 논변의 사례를 담은 이 책에는 매우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논쟁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춘추전국시대를 시작으로 원.명.청나라까지 100명이 넘는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 1부는 사회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고통과 상처에 신음하던 시대에 제자백가들(관중, 공자, 손자, 오자, 묵자, 양주, 상앙, 맹자, 노자, 장자, 혜시, 공손룡, 순자, 한비자..)의 논변을 살펴본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논변가는 중국 최초의 직업 변호사라 할 수 있는 등석이다. 등석의 논변은 양가론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두고 서로 대립되는 각도로 그것을 고찰하여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결론을 얻는 것으로 '부잣집 시체를 둘러싼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통해 양가론의 논변이 펼쳐진다. ‘모든 싸움을 버리고 절성(絶聖)과 기지(棄智)와 절학(絶學)을 하자 부르짖던 노자에 이어 묵자의 논변은 좋고 나쁨과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세 가지의 표준을 제기했다. 이른바 삼표이다.

 

“근본을 마련하는 게 있어여 하고 , 근원을 따지는 게 있어야 하고, 실용하는 게 있어야 한다.”

 

묵자는 논변은 반드시 옛 사람들의 경험과 일을 근거로 삼아야 하고, 또한 반드시 광대한 뭇 백성들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본 사실에서 근거를 찾아야 하며, 역시 나라와 백성의 이익에 어울리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광범위한 비유 대상을 자유자재로 선택하여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논변을 구사한 맹자 논변의 세 번째 특징은 현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노자의 사상을 이어 받은 장자도 논변에는 꽤나 탁월한 듯하다.

 

 

“개는 잘 짖는다고 좋다 하지 않고 사람은 말을 잘한다고 현명하다고 하지 않는다.”-장자

 

 

혜시는 비유법 사용을 잘 하였는데 위기 때마다 절묘한 비유로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는 하였다. 귀곡자 비겸술은 상대의 지혜를 세심하게 헤아리고, 상대의 재간과 능력을 달아 보며, 상대의 기개와 성세를 추측해서 통제 수단을 만들어 이것으로 상대에 맞서기도 하고 상대를 따르기도 하면서 유혹하는 말로 화합하고, 뜻을 헤아림으로써 융화한 연후에 상대를 옭아매는 기술이고 췌마술은 상대의 발언을 통해 그가 드러내지 않은 감춰진 정황을 이해하는 기술이다. 순자는 일찍이 논변의 작용을 매우 중요시했기에 군자필변‘君子必辯’ 즉 군자는 반드시 변론을 거쳐야 한다고 하였다.

 

 

 

 2부는 백가쟁명이 끝나고 진한시대에서 남북조 시대까지 약 팔백여 년간의 ‘궁정 논변’을 다룬다. 이 시대에 해당하는 논변가로 역이기, 괴통, 동중서, 소무, 염철 회의, 유향, 곡영, 왕충, 진번, 제갈량, 등지, 진복 유총, 범진 등이 있다.

3부는 당나라와 송나라, 두 왕조의 긴 통치기간 동안 잦은 외적의 침입으로 군주와 신하 사이, 신하와 신하사이의 논쟁이 치열하게 오갔던 시기로 궁정 논변의 황금기를 이룬 시기이다. 논변가로서는 당태종과 위징, 적인걸, 요숭, 한유, 손석, 범중엄, 구양수, 왕안석, 정호, 주희 이강 등이 있다.

4부는 원,명,청 시대에 이르러 원나라의 통치는 가혹해지고 청나라 시대에는 문자옥이 크게 일어나 살벌한 전제 정치가 펼쳐지게 되자 논변이 점차적으로 쇠락해가는 시기이다. 논변가로는 개묘, 장양호, 주원장, 유근, 해서, 동림당, 이지 등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논변사화(論辯史話)'이다. 책을 다 읽고 논변사화가 더 적확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자가 '쟁경(爭經)' 이라고 번역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매우 탁월한 제목이라 여겨진다. 논증적 의사(논변)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을 살펴보면 더욱 의미가 확실해진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문답식 대화법으로 진리(최고의 선)에 이르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는 하나의 논변이나 궤변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진리를 추론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이 책은 철학가들의 '논변'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더욱 무릎을 치게 하는 뜻이었다.  이 책에 쓰여진 經(경)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경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에서 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철학의 어원 필로소피 역시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불교의 ’經(경)‘과 같은 의미이다. 쟁경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논변을 통해 지혜 (진리)에 이르게 하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철학자들이 펼치는 논변의  향연은 각기 다른 사유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논변이 각 시대마다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지를 거시적인 흐름으로 맥을 짚어주기도 하는 역사서로도 읽을 수 있다. 《쟁경》을 통해 말을 잘하기보다는 무엇이 진정 이기는 삶인지를 되새겨 보게 하는 삶의 웅숭깊은 철학서로도 최고인 책이다.

 

"예로부터 말은 많음을 좇지 않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좇았다. 걸음은 꼭 멀리 가는 것만을 좇지 않고 왜 가는가를 좇았다. 말은 마음속으로 도리에 맞으면 말재주가 비록 눌변일지라도 변론은 남의 마음에 들어찬다. 때문에 사람은 심변을 좇고, 굽변을 좇지 않았다. 심변은 말이 어눌할지라도 사실을 배반하지 않고, 구변은 말이 듣기 좋더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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