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건너는 아이들
코번 애디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태양을 건너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 한참 화두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떠올랐다. 마이클 샌델은 시장만능주의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침범하면서 ‘정의’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고 사회가 점점 비도덕적이며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작년에 개봉한 《공모자들》은 장기매매를 다룬 영화로 매우 참혹하고도 잔인하게 장기매매의 현장을 리얼하게 재현하며 잔인한 영화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실로 영화를 보다보면 픽션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였는데 이후<PD수첩>에서 장기매매의 실체를 추적하는 취재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야 영화와 같은 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같은 하늘아래 일어나고 있음을 절감切感했었다. 이 책 역시도 마찬가지다. 인신매매, 믿기 힘든 참혹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읽는 내내 괴로웠고 그 대상이 열 살 소녀, 그리고 소녀라 부르기 힘든 아이에게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경악스러웠다.

 

 

인도는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 100위순에 들어가는 소위 ‘갑부’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하지만, 갑부가 많아도 나라는 가난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도의 경제 성장이 상승세를 기록하였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은 아마도 편중된 부와 신분제도의 한계가 아닐까 한다. 여전히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인도에서 그래도 카스트의 상위층에 속하며 유복한 생활을 하던 가정에 불어 닥친 비운의 쓰나미는 인도 해변의 절반을 강타한 후, 즐비한 시체들을 배설물로 남긴 채 사라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VIP입장권으로 공연을 가기위해 가슴 설레어 했던 아할리아와 시타 자매는 쓰나미가 휩쓸고 지난 자리에 죽어 있는 부모님과 식구들을 발견하고도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아할리아는 자신보다 어린 시타의 눈물을 본 후에야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제서야  시타를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살기위해 한없이 걸어간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  자신들을 팔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할리아와 시타는 구조의 요청을 하지만, 낯선 사람은 잔인하게 매음굴에 두 아이를 높은 가격에 팔고 떠나갔다. 어리고 처녀이며, 이쁘기 때문에 최상품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매음굴에서 아할리아는 절망하고 또 절망하고 체념에 이르게 되지만, 동생 시타 때문에 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저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뿐이었는데...

 

눈을 감고, 내일 벌어질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 자매들을 구원해줄 운명의 주인공 이타주의 변호사 토머스.

 토머스는 여느 변호사들처럼 이타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돈이 되는 일이 중심이었던 그가 인신매매단의 구원자가 된 이유는 아이를 잃는 아픔에서 비롯되었다. 사랑하는 아내 프리야와의 아이가 영아돌연사로 사망하자 둘 사이에는 고통이라는 간격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이를 사랑하였던 프리야는 아이를 잃은 후 점점 히스테릭해져만 갔고 아이를 잃은 슬픔과 프리야의 히스테릭 속에서 탈출구가 필요했던 토머스는 동료 테라와 잠깐의 외도를 하게 된다. 그사이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인도로 떠나가 버린 프리야를 떠올리며 원망과 그리움의 나날을 하며 보내던 중 우연히 공원에서 여자아이를 납치하는 인신 매매단을 목격하게 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실낱같은 삶의 목적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은 처음으로 토머스에게 죽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남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희망의 불씨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마침 로펌회사에서도 토머스에게 일 년의 안식년을 제안하자 토머스는 망설임 없이 인도 홍등가를 위한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기 위해 짐을 싼다. 그곳, 아내 프리야가 있고 인신 매매단에 납치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죽은 아이를 위해서.

 

아할리아는 토머스에 의해서 구출되지만, 시타는 이미 마약운반책으로 팔린 상태, 수녀원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아할리아는 시타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지만, 시타의 행방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시타를 찾기 위해 토머스는 인신매매단과 접촉을 시도하지만, 워낙 철저한 점조직인 인신매매단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데.... 시타를 향한 그리움과 더불어 아할리아의 몸속에는 매음굴에서 잉태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왜 인생은 이리도 고달플까?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지 뭐. 우리가 쉽지 않은 길을 택하기도 했고.

 

인신매매, 사람이 물건인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마이클 샌델이 말한 시장만능주의의 자화상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무서운 세상이라는 것에 둔중한 충격을 느낀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신매매라는 자극적인 소재임에도 그 안에 담은 이야기는 삶이라는 스펙트럼에 파생되는 사랑과 우애와 죽음과 고통의 성찰의 이야기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도덕성이 점점 소멸되고 시장만능주의에 물들어있을지라도 삶은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둔중한 울림의 책이다.

 

  

정의는 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러 개의 가치 중 하나가 아니다. 정의는 모든 사회 덕목 가운데 최상의 것, 다른 것보다 앞서고, 반드시 부딪쳐야 할 가치다. 부당한 방법으로 행복을 얻었다면, 그 세계는 행복이 아닌 정의가 더 중요하게 다가설 것이다. 정의가 특정 개인의 권리에서 나온다면, 일반 복리조차 그 개인의 권리를 능가할 수 없다. -마이클 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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