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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평점 :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는 위태로운 부부생활을 목격하게 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부부처럼 성스러운 맺어짐은 없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맺어지면 서로가 불행할 뿐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의 격한 이혼소송을 두고 한 기자가 그래도 한때 서로 사랑했던 사이일텐데 지나친 이혼소송은 보기 안 좋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남이 님이 되는 것은 쉬워도 님이 남이 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고...이 책 《나를 찾아줘》 는 실종소녀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얼핏 들춰본 실종 1일,2일,3일 이라는 카운트다운을 보았을 때 실종 소녀를 찾는 부모의 이야기라고 어림짐작을 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설마 부인의 실종일 줄이야 ...흠...
그럼 한 가지 질문. 너무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쓴 책의 모델 《어메이징 에이미》의 주인공으로 인형같은 미모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항상 주목받았고 그런 특별함을 즐겼다. 자뻑보다 심한 증세를 뭐라 하더라, 아 ~ 공주병. 그녀는 심각한 공주병을 앓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인이나 난장이로 만들어버리는 심한 백설공주병을 앓고 있다. 그런 그녀가 첫 눈에 반한 남자, 닉은 행운의 남자일까? 불행의 남자일까? (답은 책을 읽고 판단을 ^^)
‘어메이징’ 한 에이미를 만난 행운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닉은 에이미의 까탈스럽고 변덕스러운 성격에 질려버린다. 기자였던 닉이 실직하자, 에이미도 실직하고 두 백수는 돈 많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고가의 주택에 살지만, 경제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동시에 둘 사이에도 브레이크가 작동된다. 닉은 점점 무너져가는 결혼생활의 위태로움 속에서도 선뜻 헤어지지 못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에이미의 돈으로 바를 차렸기 때문이다. 실직 상태였던 닉은 쌍둥이 동생 고 역시 실직되자, 바를 차렸는데 그것이 모두 부인 에이미의 전 재산이라는 것. 그러던 어느 7월의 아침, 결혼5주년을 맞이한 날, 에이미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에이미가 실종된 이후, 모든 것이 계획된 범죄라는 듯, 닉이 에이미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인양 흘러간다. 에이미가 실종되기 전 갑자기 증액된 아내의 생명보험금과 닉의 노트북에 검색된 ‘미시시피 강을 떠내려가는 시체’ 라든지 창고에 가득 쌓인 고가의 취미 용품등은 졸지에 닉을 아내의 실종 신고자가 아닌 아내의 살해범으로 둔갑해 놓는다. 게다가 발견된 에이미의 일기장에는 닉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의 기록이었으니... 게다가 결혼하기전부터 유명했던 그녀로 인해 닉은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로 메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닉은 나를 사랑했다. ‘아’가 여섯 개쯤 들어가는 사랑. 그는 나를 사아아아아아아랑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것은 진짜 내가 아니었다. 닉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를 사랑했다.
1부에서 에이미는 사랑에 빠진 완벽한 결혼생활을 자랑한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에이미의 완벽한 결혼생활에는 붕괴의 조짐이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동화《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모델로 살아가야 했던 그녀는 만들어진 ‘하나의 제품’으로 살았다.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친절하고 사려 깊은데다가 재치 있고 쿨한 여자가 바로 에이미였다. 게다가 만들어진 제품과도 같은 부부이미지의 장인장모 틈에서 닉은 이방인과 같은 낯선 느낌을 항상 느껴야했고 에이미의 평범하지 않은 성격은 닉을 벼랑끝으로 내몬다. 닉의 생각과 교차되어 진행되는 에이미의 이야기는 결혼에 관한 남녀의 동상이몽처럼 서로 다른 생각의 평행선을 그린다.
이어 2부에서는 서서히 에이미의 정체가 드러난다. 남들과는 다른 성장기를 보냈던 에이미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 소시오패스로 자란다. 마치 오래 전 보았던 《요람을 흔드는 손》의 악녀-미소를 머금고 눈빛하나로 사람 하나 거뜬히 죽이는 여자-와 같은 모습이다. 드러나는 에이미의 정체에 경악한 닉은 에이미의 죄를 밝히기 위해 쌍둥이 동생과 의기투합하지만, 글쎄 악녀를 이긴 남자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
정신없이 빠져 들어 읽었던 것 같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지만, 이 점 찍기가 또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씀. 불타오르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백일이라고 했던가 .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만나는 남과여의 결말을 보는 듯 했다. 뭐 닉과 에이미의 애증으로 점철된 결혼의 역사도 사랑하기 때문이라면 할말은 없지만, 나름 결혼생활을 설명하자면 아마도 잔잔한 호숫가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는 완벽해보이고 우아해보일지라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발을 경박스러울 정도로 굴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경박스러울 정도의 발놀림의 힘은 사랑일 것이다. 너무도 완벽해보였던 닉과 에이미의 모습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멈춘 순간, 완벽하고 우아해보이는 모습대신 서로에게 증오의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느낀 생각이다. 처음에는 한 편의 스릴러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으나, 점점 접입가경의 치정극은 싸이코 드라마로 변해간다. 그러나, 남녀 사이에만 존재하는 말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 ^^
이렇게 《나를 찾아줘》는 심리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듯 섬세한 심리 묘사와 극적 긴장감을 잠시도 늦추지 않는다. 거기에 남녀간 사랑의 면면들을 길리언 플린만의 여성적인 필체로 그려내고 있어 스릴러이지만 스릴러라 느낄 새 없이, 현실의 한 페이지처럼 책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잔잔하게 퍼지는 소름과 같은 심리극이라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