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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
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평점 :
종교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종파가 결정된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중 과학자들의 책들은 상당히 비약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책들이 많았다. 더욱이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도덕이란, 비약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무신론자, 신이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련의 新신무신론자들은 과학적 방법에 따른 이성적 무신론을 따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신무신론자들은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대니얼 데닛,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샘 해리스를 꼽고 있다.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이런 것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는 싸이코패스가 등장한다. 이 싸이코패스는 알다시피 도덕적인 감정이나 양심을 느낄 수 없다. 한마디로 뇌의 한 부분이 고장 난 것이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패스에게 마음의 아픔과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주인공(이병헌)은 싸이코패스(최민식)을 죽음 직전까지의 고통을 준 뒤 놓아주곤 하는데 정작 싸이코패스는 괴로워하기는커녕 그 순간들을 즐긴다. 좌절한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느끼라고 애원까지 하지만 정작 싸이코패스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도덕(선)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싸이코패스는 악하다. 싸이코패스에게는 선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싸이코패스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싸이코패스를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무신론자들은 악조차 자연의 일부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태생적으로 싸이코패스로 태어난 사람을 ‘게임이론’을 적용하여 치료할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신무신론자들은 싸이코패스를 인간의 다른 능력처럼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뇌의 단계에 불과한 자연적인 형질로 설명하는 동시에 우리의 집단적인 행복은 자연적인 습성에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싸이코 패스를 뇌신경과학으로서 치료 가능한 질병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 샘 해리스는 《자유 의지는 없다》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는 환상이며 우리가 자기 행동의 주체라는 뿌리 깊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우리의 경험에 의한 무의식에 뿌리를 둔 우리 마음의 역량일 뿐 ‘자유 의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뇌신경과학의 영향으로 도덕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믿음의 영역으로 들여 놓았다. 과학은 존재와 사실에 대한 믿음의 영역이고, 도덕은 당위와 가치의 영역이라는 경계(오래된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골자이다. 이에 더불어 샘 해리스는 무의식이 우리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였지만 가치에 대해서는 의식할 수 있는 '실재'의 것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에서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진리(眞理)의 사전적 정의는 “ 사실이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제, 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사실 혹은 참된 이치나 법칙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바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실’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저자가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이해한다는 말은 ‘가치의 보편적 판단’에 대한 ‘실제 근거’를 제시한다는 뜻과도 같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이제까지 ‘도덕적 진리’의 몫을 담당하고 있던 종교가 그동안 ‘신에 대한 믿음으로 삶의 의미와 도덕 지침의 원천’이라는 주장은 비논리적이라고 하며 논리적이고도 실제 근거인 과학적인 ‘믿음’으로서 종교를 이해할 수 있을 때만이 종교가 가르치는 ‘도덕적 진리’로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도덕과 행복의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이 무의미하며 뇌는 틀림없이 사회적 정서적 상호작용
, 도덕 , 문화, 이 세 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첫째, 나는 합당하게 가치를 둘 만한 유일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 존재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어떤 지점에서는 반드시 뇌와 관련된 사실이나 혹은 뇌와 세계 전체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사실로 설명될 것이다.
둘째, ‘객관적 지식’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우선적으로 가치를 두어야 하는 원칙에 따라 사실을 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실과 가치 양쪽 영역에서 인간의 뇌는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시스템을 분명 공유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며, 왜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답이다. 이론과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또 그것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기에 믿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것의 거짓을 증명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강령의 핵심이자, 인지의 규범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관한한 ‘가치 없는 사실은 없다.’-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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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에서 달라이 라마는 현대의 종교가 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달로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의 가치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샘 해리스가 도덕과 행복의 과학적 연구가 왜 필요한지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종교를 이성적으로 포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샘 해리스가 종교를 가진 동료 과학자에게 삼위일체에 대한 과학적 논리가 부족하다며 과학적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종교적 믿음은 아무 의미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불성설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영혼'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근거'로 증명할 수 있을 때에라야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 사이에 영혼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영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태이다. 분명히 종교에는 영적인 부분이 있다. 애초부터 무신론자들의 ‘신이 없다'는 전제하에 시작되는 과학자들의 비약적인 논리는 샘 해리스에게서도 보여지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믿음’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것을 증명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이르는 '본질'이나 '보편적 진리'에 다다르기에는 출발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인과 과학자들의 ‘믿음’이라는 '보편적 진리'가 같아져야 과학적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종교가 담당하던 몫을 이제는 과학이 그 자리를 메우려고 하는 시도는 오래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은 ‘종교의 종말’을 예고할 정도로 민감하게 종교를 자극한다. 과거 감성이 넘치던 시대에는 종교의 ‘도덕적 진리’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그 ‘가치의 보편적 판단’에 대한 ‘실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이 점점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현상은 현대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일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뇌과학자들에게는 도덕과 과학의 새 지평을 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 줄 책이지만 종교인들에게는 더욱 이성적으로 무장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서로 편견을 가지고 부정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원치 않으면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를 포괄하고 무신론과 유신론의 믿음과 의심을 모두 고려하며, 더 넓은 자유 원칙이 과학과 이성과 합리성이 의식을 고양시켜야 한다. 자유를 위한다는 과학과 이성과 합리성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_p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