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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신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인간의 욕망은 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손 안 가득 모래를 쥐면 모래는 절대 잡혀있지 않는다. 손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눈치 못하는 사이에 어느 새 다 사라져버린다. 모래를 쥘 때마다 욕망을 쥐고 있는 것이란 아마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생명을 갉아먹고 빠져나가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 결국 손 안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는 이미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이다. 《궁극의 아이》에는 인간 욕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있다. 욕망을 손에 가득 쥐고 있지만, 죽음에 이르렀을 때야 아무 것도 자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사랑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세계 각 국의 사람들에게 십 년 전 죽은 한 남자 ‘신가야’의 편지가 배달되는 것이 시발점이다. 911테러가 일어난 지 꼭 십년이 된 날, 편지를 받은 사이먼에게 911테러사건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날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내 모니카가 내연의 남자를 만나러 갔다가 죽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모니카의 무덤에서 원망과 미움으로 사랑을 추억하던 남자에게 배달 된 신가야의 편지는 사이먼을 다시 911테러가 일어나던 날 밤으로 돌려놓는다.
“이 편지가 배달되는 날부터 오일 동안 매일 한 명씩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편지는 FBI 요원 사이먼 켄에게도 배달되었고, 정신병자의 장난이라 치부하였던 사이먼 켄은 자신의 눈앞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자,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편지를 보낸 신가야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엘리스의 집에서 사이먼은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되는데, 신가야는 엘리스 눈앞에서 십 년 전 자살하였다는 것.
엘리스는 십 년 전 신가야를 만난 뒤로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간 적이 없다. 168kg라는 비대한 몸으로는 움직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인기피증과 같은 두려움, 그리고 신가야가 남겨준 사랑의 상처는 엘리스를 과거 속에만 존재하게 한다. 십 년 전 단 5일의 사랑으로 남은 딸 미셸이 엘리스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전부이다. 그리고 엘리스가 밖을 나가지 않는 또 한가지의 이유는 ‘과잉 기억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망각 능력이 상실되어 기억을 통제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엘리스는 일곱 살 이후의 모든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엘리스와 신가야의 5일이라는 짧은 만남은 십년 후에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가 담겨 있는 중요한 단서의 기억들이다.
세계적인 곡물 기업의 총수 나다니엘 밀스타인을 필두로 하여 두 번째 희생자는 방산 업체의 대부 안톤 쉬프 이어 체임벌린, 킨데마이어, 순서로 암살 당한다. 이들의 교집합은 ‘ 카이헨동 연구소’와 세계적인 거물들이라는 것이다. 카이헨동 연구소에 소속된 이들은 ‘악마개구리’로 불리며 세계의 모든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 할 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는미국대통령도 하수인에 불과하다. 악마 개구리들을 조여가는 신가야의 살해 계획은 악마개구리의 우두머리 오귀스트 벨몽을 남겨두고 미궁속을 헤매던 중, 오귀스트 벨몽에게 엘리스의 딸 미셸이 납치되면서 엘리스는 처음으로 집을 나서는 모험을 감행한다.
십 년전의 과거로 돌아가 신가야와 함께 한 시간들에는 십 년 후를 위한 철저한 계획이 있다. 한국에서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았던 신가야는 췌장암에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를 위해 은행을 털었다가 ‘아담의 유치원’이라는 지문 프로그램에 의해 악마개구리들에게 발견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궁극의 아이’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지문과 생김새가 똑같기 때문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아이들은 열 살 전후로 징후가 포착되며, 검은 색과 초록색 눈동자 ‘오드 아이’가 특징으로 나타난다. 고대이집트에서는 궁극의 아이가 어린 신관으로 추앙 받았던 것처럼 악마개구리들은 궁극의 아이들이 보는 미래로 세계를 재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수술비와 치료비와 맞바꾸어 카이헹돈 연구소에서 미래를 읽어주던 신가야는 911테러를 예견하고 사망자 명단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며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악마개구리들은 모른 척 한다. 거대한 테러앞에서 악마개구리들은 생명에 관심은 없었고 오히려 테러 후 자신들에게 돌아올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을 보며 신가야는 탈출을 감행 한 뒤 운명의 여인, 엘리스를 만나게 되며 십 년후를 계획하게 된 것이다.
주말을 앞두고 이 소설을 손에 들지 말았어야 했다. 굳이 스토리 공모전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는 수식이 없어도 이 책의 시놉시스는 탁월함 그 자체이다. 전 세계인이 겪었던 911테러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해내며 문학에 리얼리즘을 더하며 미래를 보는 초능력자라는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한국인이라는 설정부터 강하게 몰입된다. 게다가 미국, 중국과 일본, 한국의 숨가쁘게 진행되는 전쟁의 징후와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현자 달라이 라마의 위태로운 행보를 지켜보는 긴장감과 일촉즉발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는 애절함이 더해져 손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방대한 스케일임에도 지루할 틈 없는 전개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애잔한 사랑은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