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 행위 전통 인물
홍원표 지음 / 인간사랑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인간은 벌이나 다른 군집 동물보다 더 정치적 동물이다.

종종 말하듯이 자연은 어느 것도 헛되이 하지 않는다.

인간은 말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유일한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언어와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일관된 이론화는 아렌트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이다. 여기서 언어, 즉 말하기란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사유를 꼽으라면 ‘말하기(언어)’ 를 꼽고 싶다.  최근 정치철학에 관련된 책을 자주 접하였는데 말하기가 왜 정치의 시작인지 《정치가 떠난 자리》의 저자 김만권이 정의한 시민의 뜻을 보면 이해가 쉽다 “스스로 바라본 것을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런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비판적 존재‘ 가 시민이라는  정의는 매우 탁월하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유의 시작 또한  언어=스스로 바라본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의 시작이 정치철학의 시작이다.

 

 

유대계 독일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을 망명하여 18년간 무국적자의 비극적 삶을 영위한 전체주의의 피해자로서 진정한 정치와 인간다운 삶을 탐구한 현대 정치철학자이다. 무국적자로 살아가면서 한나 아레트는 개인에게 최대의 비극인 “무국적은 정치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의 상실”을 체험하였다. 18년간 무국적 상태와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경험한 아렌트는  이러한 체제에서는 언어와 공간의 상호의존성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으며 전체적 지배가 말하고 행위에 참여할 기본적 권리의 박탈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언어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고 귀에 들린다. 마찬가지로 행위자들이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고자 자율적으로 모일 때 형성되는 공공영역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 인간관계망이다. 반면에 현상세계로부터 이탈한 순간 진행되는 정신활동은 노출되지 않는다. 외부에서 보이는 공공영역은 외면적 공공영역으로,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적막 상태의 정신영역은 내면적 공공영역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언어는 정신활동뿐만 아니라 활동적 삶, 특히 정치행위에 필수적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공공영역인 활동적 삶이나 정신영역의 삶도 인간적 삶의 일부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공공영역의 활동적 삶은 정의로운 정치주체로서 ‘시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서문에 우리의 삶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엮여 있으며 잘 엮거나 엮어진 인간관계는 이야기 (언어)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귀감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라는 실로 짜여진 ‘책’은 항상 가까이 할 수 있는 보배이다. 책은 아렌트의 모든 저작들을 잇고 있는 하나의 외올실-정치적 사유‘를 살펴보고 있는데 한나 아렌트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사유의 축은 '공공영역론’이다. 공공영역을 바늘로 하여 아렌트의 저작을 하나로 궤어나가는 작업의 탄생이 바로 이 책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인 셈이다.  ‘정치적인 것’ 이란 뜻은 우리 사회의 활동영역의 모든 것을 포함한 말이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민주주의에서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이자  인간의  조건이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적 존재로 빛날 수 있는 이유가 자기 자신의 의사를 말할 수 있고 견해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잇는 외올실은 스스로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 정치사유의 시작이다. 

 

 

 

 

아렌트의 저작들은 인간의 시작능력이 왜 중요한가를 부각시키고자 노력했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정치행위로서 ‘새로운 시작’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론적으로 제시했으며, 《과거와 미래 사이》는 아렌트의 역사의식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루살렘 아이히만》은 전체주의의 잔재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지만, 아이히만을 통해서 개인의 삶에서 시작 능력을 상실을 목격하였다. 아이히만에서 아렌트는 사유하고 판단하는 삶을 포기한 개인의 악행 가능성인 ‘악의 평범성’을 조명했다. 반면에《혁명론》은 역사 속에서 발현되었던 ‘새로운 시작’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전체주의의 기원》이 시작 능력의 상실을 부각시킨 저작이라면 《혁명론》은 새로운 시작의 정치적 함의를 조명한 저작이며 아렌트 정치이론의 최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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