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떠난 자리
김만권 지음 / 그린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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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묘비에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이 쓰여 져 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나는 깨어있는 시민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정치가 떠나간 자리를 읽으면서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의미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국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 뉴욕 뉴스쿨 정치학과에서 정치이론 및 법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연구자이며,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 이론, 정의론, 민주주의 이론, 입헌주의 이론, 정치철학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 시대의 자유주의자라는 정체성과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수와 진보에 대한 정치성향의 비판이 아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짚어주며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의 의미를 다시 되찾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이 민주주의 30년 되는 해이다. 지난한 30년의 굴곡진 정치사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깊이  뿌리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정치현실이다. 더군다나 자유시장주의로 인해 자본주의가 브레이크 없는 차처럼 폭주하고 있는 이 때에 민주주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가 깊숙이 뿌리를 내리기 이전에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앞서갔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우리 사회에서의 민주주의 상실은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의 부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가 부실한 탓이라고 한다. 오히려 현실의 정치구조와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민주주의 상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의 상실 민주주의의 상실, 자유주의의 상실, 진보의 상실, 소통의 상실, 유토피아의 상실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을 통해 꼭 이해하는 개념으로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도망자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자유로운 시민게릴라라는 개념이다.

*‘도망자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원래 민주주의가 의도했던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의 함의다. 민주주의가 도망쳐 버린 자리에 시민들의 모습. 정치엘리트들이 남용하는 정치에 무지할 뿐만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구경꾼으로 그려내고 있는 시민의 모습을 일컬음이다.저자는 이러한 구경꾼의 모습을 한 시민들이 스스로 바라본 것을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런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비판적 존재로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시민들이 스스로 해방된 관객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한다.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은 무지와 수동성을 벗어나 앎과 능동성을 추구하는 시민상을 자유를 확장하는 시민게릴라로 간명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적 존재로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의 개인들이 자기들만의 의사와 견해를 지니고 그 의사를 공적인 장에서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본질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민주정치는 그 순간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 한나 아렌트-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이란 개념이 민족이란 개념과 함께 생존 및 필요에 의해서 비롯된 개념이지만 시민은 안정된 민주정체의 가치와 틀을 존중하는 개념으로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한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의 people이라는 말의 번역은 국민이라 부르는 것보다 차이와 개인성을 인정하는 결속된 정치주체라는 속성을 가진 시민에 더 잘 어울린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잘 드러난다. 깨어있는 시민의 참 뜻은 자기만의 견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주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이 계란에 바위치기에 불과하였지만 결국은 수많은 계란의 깨짐으로 독립을 이루어내었듯이 니체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싸울 것이며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끝내 알아듣지 못할 지라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듯이 , 매일 떨어지는 바위를 들어올리는 시시포스가 우리의 모습일지라도 깨어있는 시민은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는 안되는 민주주의의 뿌리이며 근간이다.자유로운 시민 게릴라는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를 찾게 해 줄 열쇠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시민 개개인이 독립된 존재로서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글쓰기를 하라는 조언이 실려 있다.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는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설계하는 일로 사유하며 성찰함으로써 함께 참여하는 정치에 다가가라는 것은 점점 인터넷이 점점 발달하면서 정치의 형태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읽은 정치서적에서도 인터넷에서 형성되고 있는 헤테로토피아(이견과 차이의 중요성)’호모토피아(합의와 동의)’와 같은 새로운 계급의 자유로운 시민 게릴라’  형태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데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시민참여는 다른 어떠한 집단보다도 빠르고 쉽게 뭉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뜻의 적확한 표현과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되는 글쓰기가 더욱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현재 여러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민주적 문화의 혁명을 이루어 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보수-진보 양 세력 간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보수-진보의 대격돌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팽팽하게 대립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보수 일변도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보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서로간의 화합과 균형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당면한 문제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시민의 힘이다.  《정치가 떠난 자리》로 자유로운 시민의 한 걸음을 겨우 디뎌본 기분이다. 수준 높은 정치철학서로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왜 필요한지를 느끼기에는 , 충분한 책이다. 스테반 에셀이 무관심이야말로 민주주의 최고의 적이라 하였듯이 참여하는 시민,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이 책의 일독은 불가피해 보인다.

 

 

 

참다운 애국주의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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