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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잔칫날처럼 - 고은 대표시선집
고은 지음, 백낙청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삶
비록 우리가 몇가지 가진 것 없어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의 모습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의 소리 들을 일이다.
우리가 기역 니은 나는 것 없어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고군산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다 가지겠는가.
또 무엇을 생이지지(生而知之)로 안다 하겠는가.
잎새 나서 지고 물도 차면 기우므로
우리도 그것들이 우리 따르듯 따라서
무정(無情)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 갈 일이다.
겨우내 얼어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는 생명력 넘치는 봄이 드디어 왔다. 고은 시인은 봄을 '아무리 숨 막히던 긴 겨울이라도 겨울은 끝내 하나의 봄이고야 만다.' 라고 노래한다. '그동안 언 산 언 것들 그대들도 끝내 녹고야 만다.' 기나긴 어둠이 지나고 오는 새벽빛의 아름다움처럼 긴 겨울의 끝에 걸린 봄이란, 일년 중의 가장 아름다운 날이다. 이렇게 봄은 시인의 가슴으로부터 시작된다. 《삶》 이 시는 곱씹을 수록 다가오는 의미가 틀려진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되고 많은 것을 아무렇지 않게 잊고 산다. 하지만 우리에게의 모든 삶에는 '시'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란, 자연이 주는 삶의 의미를 배워가는 길이다. 자연과 멀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는 지도 모르겠다. '지는 나무 잎새의 소리'나 '흐득흐득 지는 잎새의 소리 ' 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쓸 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을 배우는 자세, 그것이 바로 고은 시인의 매력이다.
시가 오지 않으면 흙을 팠다. 흙 속에 시의 넋이 더러 묻혀 있다가 내 몸에 떨며 들어왔다.
고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시인의 시와 닮은 점들을 발견하곤 하였다. 김수영 시인이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한 말처럼 고은의 시는 온 몸으로 써내려 간 시들이었다. 또한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것이라고 했던 김수영의 말처럼 시 전체에서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눈부신 비상이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한 줄기 빛으로 뻗어 오르는 작은 불씨처럼 피어오른다. 고은 시인의 시는 그래서 삶 그 자체이다.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는 시, 온몸으로 써내려간 그 시속에 넋을 담았다.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유일한 아픔인 넋이란, 분단의 아픔을 가진 민족만이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일인칭은 슬프다
슬프다 깨달음은 어느새 모순이 된다
지난 세기 초
소비에트 시인들은
'우리들'이라고만 말하기로 했다
'우리들'이라고만
시인 자신을 부르기로 했다
황홀했다
그 결정은
폭설 때문에
거리에 나가지 못한 채
방 안에 서성거릴 때도 유효했다
저 혼자.
'우리들……'이라고 맹세했다
거울 저쪽에서 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중략)
그 이래 시인들에게 온통 '나'뿐이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하루가 저물었다
'나'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이제 '나'가 되었다. '나'가 가지고 있는 슬픔을 말하기에 일인칭은 슬프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느 샌가 우리라는 말이 사라지고 '나'가 그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가 슬퍼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우리'를 잊어버린 '나'를 위해서 슬퍼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회 , '나'로 시작해서 '나'로 하루가 저무는 그런 하루를 사는 것을 슬퍼해야 한다. 누군가가 '시는 가난한 사치'라고 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지는 잎새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치'를 부려볼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으리라. 내게 봄이라 하여 가장 호사스러운 사치라면 고은 시인을 만난 시간들이다. 시가 가슴에 사무치도록 들어온 봄날, 고은의 노래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