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은 왜 이렇게 끔찍하단 말인가. 삶이란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와 같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 수프를 마셔야 한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줄리언 반스가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한 말이 머리를 부유한다.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 그것을 마셔야하는 삶이란, 얼마나 끔찍하단 말인가.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라일라의 삶은 마치 그러했다. 일곱 살에 인신매매단에 납치 당한 뒤의 라일라의 삶에 무슨 말을 해 줄 수가 있을까.

 

처음 황금 물고기를 펼치고 나서야 내가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문학 동네에서 출간된 책은 아니었는데 언제 읽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첫 장을 펼치고 나서야 머릿속에 라일라의 삶이 저절로 그려졌다. 라일라의 삶을 한 번쯤 만나보았다면 쉬이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고아이며 흑인인 조그마한 일곱 살 아이에게 비춰진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할 것인지는 충분히 상상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처음 라일라를 샀던 랄라 아스마는 라일라에게 부모보다 진한 사랑을 주었다. 라일라에게 세상에서 처음으로 호의를 배풀어준 사람으로 라일라에게  랄라 아스마는 엄마와도 같다. 그러나 랄라 아스마의 며느리 조라는 갖은 학대와 폭행을 일삼고 라일라를 늘 괴롭힌다. 게다가 아들 아벨은 틈만 나면 라일라를 덮치려 하고 있다. 일곱 살 소녀에게 처음 대면한 세상은 공포만을 심어준다. 게다가  유일한 사랑을 주었던 랄라 아스마가 죽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라일라는 근처에 있던 허름한 여인숙으로 도망간다. 그곳에는 랄라 아스마와 같은 친절한 자밀라 아줌마가 있었고 이쁘고 화려한 여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거리의 여자이지만, 라일라에게만은 그들은 공주님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고독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때때로 오래전 유괴 당하던 날 일을 다시 겪었다. 나는 온통 새하얀 거리 위로 쏟아져 내리던 햇살을 다시 보았고, 검은 새의 끔찍한 울음소리를 다시 들었다. 때로는 트럭에 치였을 때 내 머릿속에서 뼈가 부러지던 소리를 다시 듣기도 했다.

 

그러나, 조라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남자를 풀어 라일라를 다시 납치해 온 후  매일 라일라를 학대하며 폭행한다. 조라가 키우는 개보다도 작게 먹으며 겨우겨우 목숨을 지탱할 정도로 근근히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 라일라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프랑스부부는 사진 모델과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주지만, 들라예의 이상한 행동으로 인해 그만두게 된다. 그 사건이후 조라는 라일라를 결혼시키려 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라일라는 조라의 저택을 탈출한다. 여인숙을 다시 찾아가지만, 이미 여인숙은 사라지고 공주들도 뿔뿔히 흩어졌음을 알게 된다.

 

자밀라 아줌마로부터 로즈 부인과 조라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하나같이 나를 가두고 문을 잠그려 한다는 게 나는 너무도 이상했다.

 

강 건너 천막촌에 타가디르와 후리야를 찾아가 다시 새 삶을 살게 된 라일라. 그 곳 강 건너 천막촌의 생활은 라일라에게 처음으로 가족이 생긴 곳이기도 하고 가난을 알게 된 곳이기도 하다. 전에는 그래도 밥과 물이 풍족하였기에 가난을 느낄 수 없었던 라일라는 밥은커녕 물조차 마음껏 마실수도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대부분의  천막촌 아이들은 야산에서 삭정이를 주워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다행이도 후리야와 같이 살고 있는 타가디르의 집은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어린 라일라가 자신들처럼 살게 될까봐  타가디르와 후리야는 라일라를 학교에 보내지만,  생활고에 닥치게 되자 라일라는 다시 도둑질을 시작하게 된다. 후리야와 라일라는 천막촌을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프랑스에  밀입국을 하는데 성공하게 되지만 그곳의 삶조차도 녹녹하지 않다. 마약과 거리의 부랑자들이 넘쳐나는 도시에서 가난한 이들이 살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오랜 여정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아무리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신의 눈에는 보석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지.

 

 

소설의 마지막을 향해 가도 그녀의 표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된 일탈에 방황, 마약, 폭행, 임신 등 그녀는 어딜 가도 안전하지 않았다. 도망에 도망을 거듭하면서 친절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돌변하는 모습을 늘 겪어야 했고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다시 보스턴으로 도망과 방황을 반복하며 늘 불안한 삶을 산다.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이방인의 삶처럼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배회하는 모습이다..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그녀 라일라. 어쩌면 그녀는 소설의 첫 시작 일곱 살에 유괴 당했다.’에서 멈춰버린 채 성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오리처럼 몰아쳐대는 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녀에게 어떠한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단지, 아프고 또 아팠다. 삶은 그녀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볼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버렸고 자신을 지탱해주던 가느다란 실에 불과한 자아라는 실을 끊어버린 순간 라일라의 삶 또한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듯이 마지막에 가서야 그녀의 표류하는 삶에 드디어 희망이 찾아든다. 처음부터 그녀의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근원적인 뿌리, 자신을 태초에 품었을 자궁으로의 회귀는 모든 이들의 삶의 지표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라일라의 지난한 삶의 항해는  다시 소설의 첫 시작 즉, 원점으로의 회귀로 오랜 숙원을 이루어낸다.  잃어버린 자아’라는 근원적인 뿌리를 찾는 것은 모든 이들의 삶에서 오랜 숙원이다. 남은 귀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 내면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라일라의 모습에서 짜릿하게 전율하게 되는 이유는 이제 그녀의 표류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와 같다.     

 

표류가 끝나는 곳, 그곳에서 그녀는 황금의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다

 

여리고 약한 소녀가 겪는 지난한 항해는 때론 가슴아프게 느껴지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작은 돛단배가 미풍에 흔들리는 모습처럼 시종일관 불안하다. 삶이란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와 같을지라도 그 스프를 끝까지 마셔야한다는 줄리언 반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줄리언 반스의 다음에 이어진 말은 긍정의 말일거라 생각한다. 라일라의 삶에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이 드리워질지라도 한 번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듯이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황금 물고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표류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오 물고기여 , 작은 황금 물고기여, 조심하라!

세상에는 너를 노리는 올가미와 그물이 수없이 많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