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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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읽자니, 작년 2012 대한민국 건축사대회에서 대상 수상작이 자연적으로 떠올랐다. 건축사대회 사회공공부문의 대상을 수상한 서천 『봄의 마을』은 건축과 스토리텔링의 탁월한 조화로 이루어낸 쾌거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건축이 있지만 그 건축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이라는 다리를 놓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건축이라는 나무에 이야기(희로애락)라는 꽃을 피웠다.

 

                                        

 

“건축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갈 때, 또한 세상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할 때, 즉 예술의 특성을 띠기 시작할 때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폴 골드버거-

 

희喜, 

서대문 형무소 앞, 죽은 딸을 위해 아버지가 지은 ‘이진아 기념 도서관’ 을 보며 콧날이 시큰해진 것은 세진엄마의 메모때문이다. 건축가는 ‘이진아’를 위해서 ‘이진아’를 잊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가슴에 딸을 묻은 아버지의 슬픔을 그 안에 담고 인왕산의 일부로서 즐겁고 의미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과정은 눈가를 촉촉히 하게 하고, 그 과정을 이웃 주민인 세진엄마가 매일 같은 장소에서 1년 동안 찍은 사진 84장과 메모로 눈물은 더욱 참기 힘들었다. 세진엄마의  메모에는 “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지만 그래도 진아 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세진엄마는 동네에 도서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도서관이 지어지는 모습을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매일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난 이진아 기념 도서관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건축이 주는 의미, 삶을 오롯이 담아낸 그릇이라는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슬픔은 건축이 되었고 건축을 만든 건축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아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마치 건축이 삶 한 가운데 씨로 뿌려져 열매를 맺듯이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야기기 담긴 건축만큼 아름다운 건축은 없다.

 

 

로怒,

2012년 5월 5일 문을 연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가히 ‘이야기로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기념관이 지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정부 지원금과 일본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으기까지 십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박물관 공모전에서 당선된 부부 건축가 장영철, 전숙희 씨의 설계로 탄생하게 된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건물 앞쪽의 ‘스크린 벽돌’이다. 벽돌 하나하나에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글들이 벽 정면을 가득 채웠다. 저자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지어졌으되 완성되지 않은 박물관이라고 한다.

 

 

 

일본이 스스로의 범죄를 인정하고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사죄를 하고 할머니들의 한이 풀릴 때 이 박물관은 완성될 것이다.

 

 

 

 

 

시드니를 대표하는 상징, 오페라하우스에 얽힌 이야기는 후에 오페라하우스를 볼 때마다 떠오를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오페라하우스는 덴마크 건축가 이외른 우촌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그러나, 건축주와 건축가의 오랜 싸움의 중심에 있어야 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처음 안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오페라하우스의 건축가라면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을텐데 자신의 건축물을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았다는 우촌의 분노는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분노가 쌓여 완성되었음에도 건축 역사상 가장 성공한 건물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저자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미스터리한 축복을 받은 건축물이란 평을 남긴다.

 

 

애哀

故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다. 가시는 길조차도 당신의 뜻인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유언 때문에 국립현충원에도 묻히지 못한 채 봉하마을에 잠들게 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 눈시울을 훔치게 되었다. 가시는 길이라도 외롭지 않게 건축가와 수많은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탄생하게 된 곳이 봉하마을 묘역이다. 봉하마을 묘역은 한국에 없었던 무덤 건축의 새로운 사례다.

 

 

 건축은 삶을 담지만, 죽음을 담기도 한다. 그렇지만 죽음을 담는 건축 역시 죽은 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산 자들을 위한 공간이란 점에서 삶을 담는 곳이 된다. 죽음으로 삶을 담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이 건축물 아닌 건축물은 지워지면서 완성되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락樂,

건축가들처럼 창의성의 요구되는 직업은 없을 것 같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려야하고 건물과 건물이용자간의 편리도 고려해야 한다. 거기다 또 아름답기까지 해야 하니, 건축가들은 팔방미인인 경우가 많은 듯 하다. 그런 건축가의 사무실은 왠지 독특하고 튀는 분위기 일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에 나와 있는 건축가 문훈의 사무실이 건축가의 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라 여겨진다. 내부는 시뻘겋고 겉은 무당집처럼 망사가 드리워져있다. 그래서 때로는 ‘망사스타킹 집’이라고도 불리워진다는데 바닥은 흑백타일이고 실내에는 정체모를 장식품으로 가득차 있다. 언제 한번 그의 사무실을 구경가고 싶을 정도로 독특하고 충격적이다.

 

 

“저만의 공간이란 게 즐거워요. 개들이 길 다니면서 중간에 오줌 누면서 영역을 표시하잖아요? 건축가는 오줌이 아니라 자기만의 표현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싶은 겁니다.”

 

아이들 교과서가 신학기를 맞이하여 모두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바뀌었다. 건축이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듯 우리의 역사는 이야기와 함께 공존해왔다. 건물이 사람과 만났을 때, 삶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건축에 마음을 담은 이야기는 그 안에 진한 감동이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건축학 교수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 개론의 시작입니다.' 라는 말을 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건축에 담겨진 아름다움은 결국 우리의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은 그러한 삶의 첫 시작, 건축의 첫 시작을 열게 해주는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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