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 -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
마이클 에니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가장 화려한 시대이기도 하지만, 가장 부패한 시대이기도 한, 그러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시대 르네상스를 만났다.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의 회귀,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발로로서 르네상스 운동은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도 이상적인 시대이다. 그래서인지  르네상스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다. 명실공히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인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와 21세기 여전히 천재로 칭송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났다. 《포르투나: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이 책은 픽션이 아닌 팩션faction에 근거한 추리소설이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 서기관으로서 이탈리아에 들리게 되며 운명적으로 조우한 체사레 보자르와 고급 창녀였던 다미아타와의 만남은 마키아벨리의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과 추적하는 중 밝혀지는 진실들은 후에 군주론이 탄생하게 되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책은 4부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는데 1부는 다미아타라는 여인이 쓴 것이고, 나머지 3부는 마키아벨리가 쓴 것이다. 1부 네가 찾고 있는 진실을 조심하라는 다미아타가 아들에게 쓴 글이다르네상스의 꽃이라 불리우는 고급 창녀 다미아타는 교황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후안과 결혼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후안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사랑하는 아들 후안의 죽음은 그렇게 잊혀졌지만,  작은 마을에서 목없는 여인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는 다름아닌 후안의 목걸이 였다. 교황은 후안의 죽음에 석연치 않았던 부분과 목없는 여자의 시체와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다미아타를 마을에 파견한다. 대신 아들을 볼모로 잡고 있겠다는 교황의 명에 후에 아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기록으로나마 사건의 진실을 남기기 위함이다. 1부는 이렇게 다미아타가 실종되기 전까지의 기록이다.  

 아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아들이 자신의 진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편지를 읽다가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다. 바로 여인의 직업이었는데  르네상스 시대 여성의 지위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미아타는 편지에 자신의 직업을 거론하며  르네상스 시대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세 가지 뿐이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결혼이란 부모가 지위가 어느 정도 있고  지참금을 많이 준비할 수 있는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부모가 있지만  지참금이 없는 경우에는 정숙한 수녀의 길이 주어진다. 그러나부모도 없고 지참금도 없는 여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창녀의 길이 주어진다. 다미아타의 어머니가 다미아타를 위해서 몸을 팔았듯 다미아타는 살기 위해서 고급 창녀가 되었을 뿐이다. 아들에게 자신이 창녀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다미아타의 삶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시대의 모순이었다.

 

후안공작이 살해당하면서 가장 큰 이득을 받은 사람은 단연코 형 체사레 보르자였다. 알렉산더 교황이 동생 후안만을 이뻐할 동안 작은 곳에서 추기경에 만족하고 살아야 했던 체사레는 후안이 죽자, 교회의 세속적 권력을 야심차게 확장해 나갔다. 이제 체사레 보자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후안의 죽음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싶더니 목없는 여인의 시체로 인해 후안의 죽음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때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다미아타 역시 체사레와 무관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

 

가장 좋은 진실이란 아흔 아홉이 거짓이고 나머지 한 부분이 참인 거겠죠.

 

교황의 명으로 이몰라에 파견된 다미아타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마키아벨리는 다미아타 근처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발렌티노 공작 밑에서 해부학과 과학수사학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레오나르도를 만난다. 레오나르도의 과학수사는 매우 정교하고 한치의 틈도 없는 완벽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건은 오히려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이 소설이 장미의 이름과 비견되어지는 이유는 가장 부패하고 세속적인 교회 권력을 고발하는 데에 있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심판의 어리석음과 권력부패의 최고 정점을 이루는 교황의 면죄부 판매등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타락하고도 부패한 교회를 여실없이 보여주며 시대정신의 날을 세우는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의 회귀라는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배경을 어림짐작하게 된다. 게다가 잔인하고도 냉혈한이자 연쇄살인범의 실체에 대해서도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 반전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최근에 밝혀져 화제가 되었던 레오나르도의 해부 습작 그림이 연상 되어지는 장면들이 세세하게 그려지고 있는 부분이다. 해부학자로서도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과학적 수사는 예술과 과학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사건의 열쇠를 가지고 있던 다미아타라는 여인과 펼쳐지는 마키아벨리와의 로맨스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기제역할을 한다. 후에 군주론의 모델이 되는 체사레의 등장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 가장 강력한 군주를 위해 집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집필된 군주론은 가장 냉혹하고도 잔인한 체사레와 같은 군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집필되었다는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알게 된다. 역사적 고증을 철저히 지키면서 르네상스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대로 재현해 내었다. 《포르투나: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는 사랑과 공포가 공존하는 탐욕과 매혹의 시대로서 생생히 살아 숨쉬는 르네상스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은 주로 두가지 중 하나에 의해 움직인다. 그 둘은 사랑과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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