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 마흔에 다시 읽는 동양고전 에세이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마흔이라는 나이에는 시시때때로 딜레마가 찾아오는 나이인가보다. 때론 금전적인 이유로 찾아오기도 하고 때론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때론 존재론으로도 찾아오는 것 같다. 내게는 그래도 그런  딜레마를 극복하게 해주는 매개체인 책이 있음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된 독서이지만, 독서에 빠져 사는 요즘은 가끔 찾아오는 딜레마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동양고전은 마음을 다잡아주는 데는 최고의 책이었다. 이미 사람들은 오래된 고전에서 삶의 지혜를 찾기도 하고 마음의 치유를 얻고 있듯이 동양고전은 마음의 뿌리와 같은 존재이다. 특히 불혹이란 나이는 사회생활에 적응되며 기반이 형성되어 있는 나이인 동시에 가정을 책임지는 나이이기 때문에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이이다. 참 이상한 것은 어른들이라면 잘 해야 하고 잘 한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실제 내 문제로 다가왔을 때는 어른처럼 행동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하면  마흔에는 선택이나 결정을 잘 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더욱 고민되고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전히 자기성찰의 책이나 마음을 다잡아주는 책을 떼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마흔을 타겟으로 한 성찰과 힐링이 붐을 이루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마흔만 되면 척척 잘 할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나이만 먹고 마음은 한치도 자라지 않은 경우를 깨닫고는 공자가 마흔에는 어떤 유혹에도 혹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나는 왜 아직도 혹하는 것이 많을까하는 자각으로  삶의 본질을 마주하고 싶은 욕구가 그대로 반영된 심리적 불안감 같은 것.

 

어쩌면 그것은 인생의 반을 지나왔기에 삶을 다시 재정비하는 차원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신정근은 이렇게 마흔의 나이에 삶을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동양고전에서 말하는 마흔을 이야기한다. 요즘 우리 부부는  ‘당신도 늙는구나.’ 하는 말을 자주 한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늙음을 최근에  더 자주 느끼고 있다. 이렇게 서로에게서 ‘노화’를 확인하는 시간은 때때로 서글픔을 주기도 한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노화'에 대해 세 가지 반응 양상을 보인다고 하는데 첫째가 저항, 둘째가 순응, 셋째가 자유이다.

 

여기서 저자는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시인의 말을 인용하여 노화를 정의해주고 있다.

“너희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젊음과 늙음은 그 자체로 상도 아니고 벌도 아니다. 노화는 다시, 아니 또 시작하는 것이다. 마흔의 노화는 10대의 사춘기, 20대의 청춘기처럼 다시 한 번 자신의 나이에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때이다.

 

 

그래서 마흔이라는 나이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책의 1부 불혹不惑(불혹), 혹하지 아니하리라' 에서는 마흔에 재정비되지 않으면 흔들리기 쉬운 감정들(나이듦과 욕심, 편견, 권위, 초발심, 용기)이라는 키워드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떠올리게 해주며 이에 대한 답을 『논어』『장자』『중용』『시경』부터 『한비자』『세설신어』『성학집요』와 같은 동양고전에서 찾는다.

 

“발꿈치를 들면 편하게 서 있지 못하고, 다리가 찢어지게 걸으면 오래 걷지 못한다. 자신이 보려고 하면 분명하게 보이지 않고, 자신이 기준이 되려고 하면 길이 환히 빛나지 않으며, 자신을 자랑하면 공이 없어지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면 어른이 되지 못한다. -노자 24장-

 

 

2부 유혹 誘惑 , 혹해도 좋지 아니한가 에서는 마흔에 가져야 할 마음으로 가장 우선적으로 ‘초발심’을 말하고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초발심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마흔에는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일상의 소중함, 평상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기 위해 노력해여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필요한 첫 번째 마음가짐이 바로 초발심이다. 이제까지 바쁘게 살아오면서 잊고 살아왔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계절이 주는 황홀함, 집이 주는 평온함과 같은 우리 일상에 대해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정립해야 하는 출발점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5장에서 <의미 있는 삶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에서는  이순신과 박지원, 묵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까지 ‘나’의 삶에 치중했던 삶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의미'를 되새겨준다.

 

 

이 책이 또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감성이 가득한 노래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취미는 7080노래 듣기이다. 처음에 그냥 들었던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7080 노래를 좋아한다.  지금은 서로 좋아하는 가사를 공유할 정도로 7080에 빠져있는 중이다.  들을 때마다 감성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신곡에서 느낄 수 없는 삶의 고독과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곡들은 언제나 새롭다. 그래서인지 책의 각 장  마지막 부분에 '노래에 실린 인생, 인생을 실은 노래' 를 읽을 때 공통된 감성을 느끼고 나누는 기분이 들어 즐겁고 친근한 느낌이었다. 그런 공통된 감성때문인지 나도 때로는 , 여전히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지만, 마흔에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저자의 말은 내 삶을 향한 응원처럼 들린다.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 시작하는 거야 !'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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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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