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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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복수하기 위해 보낸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불행은 바로 ‘시간’이다. 이후 인간들이 시간의 가치를 전혀 모르게 되는 것이 첫 번째 불행을 의미하듯, ‘시간’의 소중함을 자주 잊고 살기에 불행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야말로 얼마나 정직한가.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집착하고 싶고 가질 수 없기에 더 욕망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시간만 되면 가슴이 콩닥거렸던 기억이 난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 왔으면 모르겠지만, 시험공부를 한다며 책을 펴놓고 잠이 들었을 때는 더욱 시험이 두려워진다. 그때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타임머신 기계를 타고 하루 전으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한 번 쯤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시험지가 돌려질 때 그런 간절함은 더욱 커진다. 컨닝페이퍼라도 만들걸 하는 생각도 들고 친구의 답을 몰래 컨닝하고 싶을 정도의 떨리는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시험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시험볼때마다 왜그렇게 가슴이 뛰었는지 그때 아마 시간가게가 있다면, 나 역시 윤아처럼 시간을 사고 싶었을까?

 

시간과 행복한 기억을 바꿀 수 있다면?

 학교만 그만두면 시험 같은 것은 안볼 줄 알았다. 그러나 , 숱한 시험을 거쳐 지금이라는 시간에 다다르며 인생의 반을 지나왔어도 인생은 마치 평생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끊임없이 시험경쟁을 달고 사는 것보면 어른들의 삶도 아이들 못지 않게 팍팍한 것 같다.  더우기 지금처럼 치열한 입시 경쟁위주의 교육 세태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학부모들까지도 경쟁태세로 몰아 붙이기에 숨쉴 틈이 없다. 학교수업보다 학원 과외수업이 더 중요한 수업이 되어 있는 학교 교육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시간가게》의 살풍경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지금 내가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충분히 어림짐작 되었다. 아마도 지금 아이들에게 시험이란, 미래의 목표를 위한 경력의 일부분으로서 강압적으로 강요되는 의미일 뿐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윤아의 가정 또한 그런 현실의 팍팍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더욱 억척스럽게 변한 엄마에게 유일한 행복이란  윤아가 국제중학교에 입학하는 것뿐인 것도 어쩌면 팍팍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하루 종일 신발이 닳도록 발품을 팔고 집에 들어와서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오로지 윤아의 성적이라고 해도  윤아엄마를 탓할 수만은 없다. 현실의 팍팍함 속에 아이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이야말로 윤아엄마에겐 전부이다. 비록 엄마와 윤아가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산다고 해도 사회적 약자로서의 선택은 결국 성적밖에 남지 않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결국 행복은 성적순이 되었다. 엄마의 그런 보상심리를 이해하는 속깊은 아이 윤아가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전교 1등이라는 성적에 집착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달리  늘 2등에 머무는 윤아의 성적. 그런 윤아 앞에  나타난 시간가게 할아버지는 마치 달콤한 솜사탕과도 같은 유혹이었을 것이다.

 

“이 시계가 하루에 십 분의 시간을 내 줄 거야. 시간을 사는 방법은 아주 쉬워.

돈은 필요 없다. 넌 행복한 기억을 하나씩 주면 돼. 어때, 나와 거래를 하겠니?”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덜컥 시간가게 할아버지와 거래를 한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하나씩 주어야 한다는 의미를  이해 못한 채 십분의 시간을 유예하는 것에만 집착한다. 그렇게 주어진 십분과 맞바꾼 행복한 기억은 윤아에게 전교 1등이라는 행운을 준다. 1등만 하면 엄마가 기뻐할 거라 여겼던 윤아는 엄마의 기쁨이 잠시일뿐 이어진 엄마의 욕심으로 인해 영어 인증시험 준비를 채근당하고 더 잘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강박증에 빠지고 만다. 친구의 답을 베껴서 전교 1등을 하고 학교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다현이와의 행복했던 기억조차  잃어버렸건만 엄마는 행복해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준비물을 내 것으로 만들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누었던  비밀의 추억조차 시간과 바꾸어버린다. 

 

이렇게 기억을 지운 윤아는 수학 능력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시계가 작동하지 않자, 시간가게 할아버지를 찾아가는데 할아버지로 부터 진정으로 행복한 기억이 아닐 때는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보려 애쓰지만, 자신의 행복이 자신을 위한 행복이 아닌 바로 '남'을 향한 행복, 즉 만들어진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남'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윤아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기억들은 이미 시간과 바꾸었고 시간과 바꾼 처음의 기억들이야말로 진짜 '나'의 기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시간가게를 다시 찾는다.  이번에는 '행복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그러나, 시간과 맞바꾼 기억은 이제 더이상 자신의 기억이 아닌 타인의 기억이었다. 기억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들어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누구의 기억인지도 모를 기억들로 윤아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어야지. 행복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시간만 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과거도 현재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엄마 말처럼 미래에 해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에 그렇다 해도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타인의 기억에 믹스된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윤아는 처음으로 '자아찾기'에 몰입하게 된다. 한번도 '나'인 적이 없었던 아이, 공부는 잘하지만 매력없는 아이, '오로지 1등만'을 위해 달려오느라 친구하나 사귀지도 못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행복찾기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생각의 시간이다. 이런 고민은 아이들에게 진정한 '자아찾기'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선생도 부모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찾아야 하는 '시간'과 '행복'이 알려주는 삶의 진정한 가치이다.

 

나는 이 책이 무엇보다 소중한 , 그러나 쉽게 잊혀지는 '시간'과 '행복'의 진정한 가치를 떠올리게 해주고 있음에 감사하다.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체제에 내몰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게 한 것은 누구탓도 아닌 바로 우리 어른들 탓이다. 그 안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란 바늘 구멍에 낙타 들어가는 것처럼  힘이 드는 문제이다. 윤아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윤아의 보여진 이미지 그대로 '공부만 잘하지 매력은 없는 아이'가 바로 지금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윤아가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행복'을 떠올리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이 두가지의 가치들을 일깨워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수 있겠다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도 똑같은 입시지옥을 겪었지만, 지금과 같이 무한경쟁체제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의 교육정책으로 인해 아이들이 벼랑끝에 몰리고 있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는 것도 가장 큰 문제이다.  그래도 우리 세대에는 감성이 살아있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인간적인 감성들을  배울 수 있는 윗 어른들과 친밀한 소통이 가능했던 세대였다. 그런 사회적인 관계로 인해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이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많았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세대의 팍팍한 삶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도 모자라 시간을 사고 싶을 정도로 시험성적에 내몰리는 수많은 윤아들을 생산해냈다. 시간가게의 윤아가 그래서 더 애잔하고 애틋한 이유이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어른인 우리들은 무엇을 , 어떻게, 어디서부터 가르쳐주어야 할까? 어른으로서 많은 반성과 고민을 불러 일으키며 진정한 교육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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