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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ㅣ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상이 점점 복잡 다단해짐에 따라 그에 따른 구성원인 사람들도 점점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점점 타인을 이해하는 폭은 좁아지고 타인과의 벽은 점점 두꺼워진다. 착한 사람들도 많지만 악한 사람은 더 많은 세상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일단은 의심부터 해야 하는 세상이니 앞으로는 더욱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듯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타인이 착하든 나쁘든 높은 벽을 쌓는 편이다. 처음부터 타인에게 벽을 쌓지는 않았지만, 워낙 세상이 다면적이고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증명》은 그런 인간이란 존재자체에 대한 다면적이며 본성에 대한 세밀한 탐구를 보여준다.
무네스에 고이치로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미워한다. 인간이란 동물은 누구나 파헤쳐보면 '추악'이란 원소로 환원된다. 아무리 고매한 도덕가, 성숙하고 덕망 있는 성인의 가면을 쓰고 우정이나 자기희생을 역설하는 자라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기 보신의 주판을 튕기고 있다.
<인간의 증명> 이야기의 시작은 한 흑인이 비지니스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부터 시작된다. 어느 사건에도 동기가 필요한 법. 사건을 맡은 무에스네 형사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과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살해당한 흑인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단서는 오로지 낡은 밀짚 모자 하나뿐이었다. 사건을 맡은 무에스네 형사는 네 살때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면서 인간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미군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보았던 무에스네에게 인간이란 ‘악한 존재’이다. 무에스네의 이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품과 본능은 사건을 해결하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완벽한 한 가정의 한 여인이 있다. 젋고 아름다우며 여성 평론가로 명성과 부를 얻었을 뿐아니라 남편의 정치적인 지지대 역할까지 하여 완벽한 현대여성의 대명사가 된 야스기 쿄코는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일 정도로 완벽한 여인이다. 이런 아내의 유명세로 더욱 잘나가는 정치인 남편 효헤이와의 사이에 모범생아들 쿄헤이와 착한 딸 요코가 있다. 화목한 가정일 것만 같은 이 가정은 보여지는 모습과는 반대이다. 현대 사회는 부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소설속의 야스기 쿄코는 성공이라는 미명아래 물질에 물들어있으며 물질이 중심인 삶을 사는 가정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야스키 교코와 대비되는 불행한 가정의 한 여인이 있다. 남편의 병수발로 호스트일을 했던 후미에가 돌아오지 않자 남편 오야마다는 후미에를 찾아 나선다. 실종된 후미에게 내연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실종되는 마지막 장소에서 곰인형을 발견하게 된다. 곰인형에 묻은 후미에의 혈흔으로 내연남과 남편은 적이지만 동지로 연인이자 아내인 후미에를 찾아 나선다.
서로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진행되지만, 무네스에의 집요한 추리와 직감으로 인해 세 가지의 사건은 한 개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그 안에 병든 사회의 한 단면을 담아 내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하나 같이 비정할 뿐만아니라 잔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사회에 서서히 번져나가면서 생기는 사회의 다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역시도 정情이 사라지고 물질(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돈 때문에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사회’가 되었다. 비록 이 소설이 1970년대 쓰여졌지만, 인간의 비정함과 현실의 잔혹함을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밀짚 모자를 가슴에 품고 아버지의 목숨 값으로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오는 흑인 아들 조니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마음이야말로 조니가 인간이라는 증명과 마찬가지인 정情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세상을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무네스에의 냉혹한 시선처럼 인간 본성에 대한 냉혹한 시선이야말로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다면적인 인간이지만 인간을 증명할 수 있는 단 하나, 인간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정情 이란 것은 이런 비정한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존재한다. 비록 《인간의 증명》에서 보여주는 현대사회가 비정할지라도 그런 일그러진 면들 또한 세상의 한 부분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볼때 비로소 희망이라는 것이 생긴다는 것을 형사 무네스에에게 느낀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인간의 증명은 , 즉 정이란 있는 그대로의 비정한 세상을 이해하게 될때 더욱 가치있고 소중해지는 이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묻는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