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0
앤절라 카터 지음, 이귀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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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세울 계획이 많아 마음이 조급해진 상태에서 책을 읽자니 글자가 둥둥 떠다닌다. 요즘 들어 부쩍 잡다한 생각이 많아져 집중이 잘 안 되고 있다. 읽은 문장을 다시 읽고 또 읽고, 마음이 산란하다보면 사고치기 일쑤라, 조금 집중이 잘 되는 책을 고르다가 서재에서 집어든 책이 《피로 물든 방》이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잔혹동화’이다. 아무 생각 없이 첫 장을 펼쳤는데 순식간에 빠져든다. 아마도 책속의 이야기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집중하는데 오래 걸릴 테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미녀와 야수’, ‘푸른 수염’이야기, ‘장화 신은 고양이’같은 너무도 익숙한 동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잔혹한 동화 .

 

 

 

 

 

저자 앤절라 카터는 영국 작가이다. 그녀의 이력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여성 해방을 위한 해체적 글쓰기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동화와 민담, 고딕 소설과 포르노그래피 형식을 차용한 여러 소설을 출간하여 ‘카터식 글쓰기’라고 일컬어지는 독자적 세계를 확립한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은 카터의 열 가지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익숙하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느낌의 동화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녀의 독특한 문체에 녹아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앤절라 카터는

 

“이 작품은 단지 동화의 ‘다른 버전’이나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동화 속에 숨어 있는 내용을 끌어내어 그것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피로 물든 방』은 푸른 수염이야기를 개작한 잔혹동화로 문학적으로도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에로티시즘과 전래동화가 만나 카터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피카소가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온다.’ 라고 했듯이 앤절라 카터는 자신만의 잔혹동화를 완벽하게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푸른 수염의 동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듯 보이지만 앤젤라 카터가 구현해내는 잔혹동화에서 보여지는 카터의 세계는 기존에 볼 수 없던 문학적 독창성이 빛난다.  어리고 가난한 소녀가 연쇄살인마에게 시집와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표현들은 성에 눈을 뜨는 여성으로서의 변화를 에로틱하게 그리고 있고 연쇄살인마가 금기시한 비밀의 방은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뿜어내며 에로틱과 몽환적인 카터만의 잔혹동화를 선보인다. ‘미녀와 야수’를 재구성한 「리용 씨의 구혼」이나 「타이거의 신부」 또한 동화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장화 신은 괭이」, ‘백설 공주’는 「눈의 아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사랑의 집에 사는 귀부인」, ‘빨간 망토’는 「늑대인간」 「늑대 친구들」 「늑대-앨리스」로 재탄생했다.  최근 들어 유독 디스토피아 영화가 늘었다. 게다가 더 이상 미래를 핑크빛으로 희망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게다가 동화까지도 잔혹동화가 유행이다. 그만큼 현실은 불안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잔혹 동화가 주는 매력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현실의 불안을 극한의 상상력으로 몰아붙여 불안을 극복하게 해주는 반전의 묘미 같은 것?  상상무한대의 세계 《피로 물든 방》을 읽지 않았다면 이제까지 당신이 알고 있는 동화는 가짜다. ^^

 

 

어깨가 아주 넓네요.

너를 안기에 좋지.

이빨이 참 크네요.

너를 먹기에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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